歲時風俗

전승놀이 및 오락/가면놀이, 인형극, 줄타기

如岡園 2011. 12. 25. 20:13

          # 가면놀이

 가면놀이는 연극적인 전승놀이로서 민속예능상 중요한 위치에 있다. 가면놀이는 소위 산대극(山臺劇)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바, 서울의 본산대(本山臺), 양주의 별산대(別山臺)가 그것이며 황해도의 봉산탈놀음, 경상도의 오광대극(五廣大劇), 야유극(野遊劇) 등이 그 아류(亞流)이다.

 내용은 파계승과 양반에 대한 민중의 신랄한 풍자와 처첩(妻妾)의 갈등 및 인생에 대한 무상관(無常觀) 등을 산만하게 나열한 것에 불과하여 극적 긴축성 내지 통일성을 결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놀이는 대중 무용과 음악을 통해 하나의 예술적 공감 세계를 가지는 데에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며, 극적 효과라든가 사상성 같은 것은 제이의적(第二義的)인 위치에 있으므로 극적 통일성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사를 통한 풍자도 심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가벼운 희롱이나 건강한 웃음으로 돌려질 정도의 것이라고 할 만하다고 본다.

 서울과 양주의 산대놀이는 12과장(科場)이며 나머지 봉산탈놀음, 오광대 등은 7과장 또는 6과장으로 되어 있다. 사용되는 가면은 호제(瓠製), 지제(紙製) ,목제(木製) 등이 있었으나 지제가 가장 많았으며 가면 그 자체는 예술성이 희박하고 치졸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하회(河回)의 가면은 신운(神韻)을 느낄 정도의 걸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 인형극

 꼭둑각시극 또는 박첨지극(朴僉知劇)이라고 불리는 전승 인형극은 유불(儒佛) 사상이 반영되어 있는 극히 산만한 것이며, 그 내용에는 승려와 양반에 대한 야유가 있어, 산대놀이와 마찬가지로 이 놀이의 서민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 놀이의 기원은 주인공 격인 박첨지의 '첨지'라는 관명(官名)으로 추측하면 조선시대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 성인 '朴'과 꼭둑각시의 '꼭두' 등에 주목하면 그 기원은 보다 더 소급시켜야 될 것이다.

 즉 朴은 박(瓠)의 전사(轉寫)라고 볼 수 있으며, 박이 연희(演戱)와 관계되는 것은 벌써 신라시대 원효(元曉)의 창시라고 하는 무애희(無애戱) 이전이다. 또 꼭둑각시의 '꼭두'는 허수아비[傀儡], 즉 우인(偶人)이라는 뜻이며, 이른바 괴뢰희(傀儡戱) 또는 우인극(偶人劇)은  상고시대에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터이다.

 그러나 물론 현재 볼 수 있는 내용의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은 조선시대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형극 비슷한 것에 만석중놀이[曼碩僧戱, 忘釋僧戱]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대개 석가탄일인 4월 8일에 흥행되었는데, 사자가 움직이도록 되어 있는 인형, 즉 만석중과, 사슴, 노루, 잉어, 용 따위가 등장하는 것으로서, 별다른 내용은 없으며 다만 인형의 팔다리가 음악의 반주에 따라 움직인다. 이 놀이를 지족선사(知足禪師)와 황진이(黃眞伊)와의 그럴싸한 민간설화에 결부시키기도 하나 아직은 자세한 것을 알 길이 없다.

 

          # 줄타기

 줄타기는 이른바 백기(百技)니 잡희(雜戱)니 하는 것의 일종으로서 그 연원은 서역계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서역의 잡희는 수,당대(隋唐代)에 가장 풍성하게 유입되었으며, 이것이 다시 한반도에 전입되었으므로, 만일 줄타기가 그 중의 한 종목이었다고 하면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줄타기의 역사도 장구함을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연혁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문헌의 결핍으로 알 길이 없다.

 근래까지 유전된 줄타기의 실제는 먼저 줄의 높이는 대략 3미터 내외이며, 이 줄 위에서 각가지 재주를 보이는 것이었다.

 줄 타는 사람은 남자가 원칙이나 여자인 경우도 더러 있으며, 한 손에 부채나 양산을 드는 것이 상례이다. 줄을 타고 있는 동안 아래에서는 장구, 해금, 피리 등의 악대가 반주를 하여 흥을 돋운다.

 줄타기의 일당은 말하자면 전문적인 일종의 직업인이며, 이들을 사당패, 남사당, 화랑이 또는 광대라고 불렀다.

 줄타기는 4월 8일놀이, 단오, 추석 등의 명절에 공연을 하며, 또 개인의 초청에 의하여 수시로 공연을 하며 유랑생활을 하였다.

 개인초청공연은 주로 그 집의 송축연석(頌祝宴席)에서 거행되는데 환갑잔치의 경우가 많았다. 평안도, 함경도 등 북부지방에서는 환갑축연에 줄타기 외에 무동(舞童)놀이와 살판 같은 재주도 포함시켜 이것을 광대놀이라고 하였다. 

                    (梁在淵외 3인 共編 韓國風俗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