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세계

끄르일로프의 우화6) 찌르레기/돼지와 귀족집/돌멩이와 배추벌레

如岡園 2012. 6. 22. 22:54

          # 찌르레기

 찌르레기 한 마리가 어려서부터 장닭의 노래를 잘 익혀 왔다. 마치 장닭이나 된 것처럼...... 찌르레기는 숲 속에서 기쁘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모두들 이 찌르레기를 칭찬해 주었다. 보통새라면 그 칭찬 정도로써 만족했겠지만 찌르레기는 그렇지 않았다.

 질투가 대단한 새였으므로 사람들이 꾀꼬리의 노래소리를 칭찬하자 그 말을 들은 찌르레기는 이런 생각을 했다.

 (오냐 어디 두고 보자, 나도 머지 않아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테니까.)

 그 후 찌르레기는 꾀꼬리의 노래를 흉내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찌르레기의 노래는 꾀꼬리의 노래를 닮기엔 거리가 멀었다. 곡조부터가 맞지 않았다.

 어떤 때는 피리소리 같았고 어떤 때는 쉰 목소리 같았다. 그리고 때로는 염소새끼 울음 같았고, 고양이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무튼 꾀꼬리의 노래 흉내는 힘에 겨운 일이었다.

 찌르레기의 그 괴상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새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찌르레기는 엉뚱한 욕심 때문에 장닭의 흉내마저 망쳐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을 거두려면 자기 성질에 알맞은 일을 해야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의 재능을 유효하게 쓸 줄을 모른다. 사람은 제각기 개성에 맞는 재능이 있다. 그런데 남의 성공한 것을 보고 덤벼드는 수가 많다. 그것이 단 하나의 재능을 버려놓는 경우가 무척도 많다.

 

          # 돼지와 귀족집

 돼지 한 마리가 어떤 귀족의 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집을 처음 들어가 본 돼지는 외양간과 부엌을 돌아다니다가 온 몸에 먼지와 기름을 뒤집어썼다. 그리하여 개숫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돼지에게 주인은 물어보았다.

 "돼지야, 너 귀족의 집에 들어가 보니까 어떻더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귀족의 집에는 보석과 진주가 많으며 온 집안이 번쩍번쩍 광이 나게 아름답다던데?"

 "말도 말아요. 그건 다 거짓이에요. 내가 가서 보니까 귀족의 집이라고 그렇게 훌륭한 건 아니구, 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먼지라든가 구정물이 가득했어요. 이것 봐요. 아주 더러운 개숫물에 몸을 다 버렸습니다."

 

          # 돌멩이와 배추벌레

 밭이랑에 드러누운 돌멩이가 지나간 소낙비의 흉을 보고 있었다. 

 "돼먹지 못한 놈이 한바탕 떠들고 갔죠. 저 개망나니 같은 비를 보고 그래도 좋아하는 작자들이 있으니 가관이야, 무슨 귀한 손님이나 기다리듯이 비오기를 바라는 모양이지만."

 배추벌레는 돌멩이의 중얼거림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잠자코 있어요. 비는 잠간 동안 와도 가물에 말라서 기운이 빠진 밭에다 흠뿍 물을 준답니다. 그래서 농군을 기쁘게 해 준답니다. 돌멩이는 밭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무엇을 한단 말야, 당신은 남의 눈총이나 맞고 있는 거야요."

 "대체 비가 무엇을 어떻게 해준단 말야. 기껏해야 두어 시간 오다가 뚝 그치는 놈을... 나를 보란 말야, 나는 적어도 여기서 백년이나 앉아 있어! 언제나 얌전하게 말야. 그러나 누구 하나 나를 칭찬하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못 들었어, 이런 불공평한 세상이니 사람들이 지금 세상을 원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정말이지 이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하단 말야."

 - 한 직장에서 근속한다는 것은 그 인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 그 능력을 과시하는 건 못된다. 때로는 이 돌멩이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근속도 세상엔 허다한 것이다.

 

당대의 유명한 서정적 풍자시인이요 시인전기작가로 유명한 베른스키(1792~1878)공작이 말한 끄르일로프의 '냄새'는 이때까지의 러시아 문학의 온상이었던 귀족의 쌀롱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러시아의 '흙의 냄새'였던 것이다. 5천부만 팔려도 성공이라고 했던 당시의 시집 출판 사정에서 7만 5천 부나 팔렸다면, 경이적 사건에 틀림없으며 러시아 문학의 민중화는 끄르일로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언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는 이제까지의 우화시의 저급한 형식을 고도의 형식으로 끌어올렸지만 그의 용어는 다듬고 또 다듬은 말 대신에 소박한 민중의 말을 문학 표현의 수단으로 써서 성공한 것이다. 그는 민중이 즐겨 말하는 속담을 자기의 우화시 속에 많이 사용했고 그가 우화시 속에서 쓴 말은 그대로 속담이 되고 러시아 민중의 생활지혜가 되어 지금도 변함없이 살아 있다. 아니 장차도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