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귀로 백번이나 설명을 듣느니 보다 눈으로 한 번 보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한(漢)나라의 선제(宣帝)때 서북방의 유목민인 강(羌)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장군이 강의 무리 천여명을 죽인 데 대한 앙가픔이었는데 한나라 군사는 그들에게 참패를 하고 물러났다.
그 때 선조는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에게 사람을 보내어 누구를 토벌군의 장수로 삼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조충국은 그 때 나이 70세가 지나 있었는데 자기에게 맡겨 달라는 대답이었다. 그는 일찌기 흉노와의 싸움에 나섰다가 포위를 당하여 몸에 20여 군데나 상처를 입으면서도 포위망을 돌파, 전군을 건진 유공자였던 것이다.
"장군이 토벌에 나선다면 어떤 계략을 쓸테요? 그리고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겠소?"
하는 선조의 물음에 노장군은 대답하였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올시다. 현지에 가서 방책을 세우도록 하소서."
이리하여 그는 현지에 가서 정세를 살펴 둔전법(屯田法)이 상책이라고 여겼다. 기마병을 버리고 보병 만여명이 각지에 나뉘어서 농사를 지으면서 두고두고 반란을 진압한다는 방책이었다.
그는 약 1년 걸려서 진압에 성공했거니와 '百聞不如一見'이란 문자가 최초로 나타난 것도 바로 이 <趙充國傳>에서 비롯된 것이다.
# 백약지장(百藥之長)
술은 어떤 약보다도 심신에 이롭다는 말이다.
전한(前漢)과 후한(後漢) 사이의 14년간(8~22) 신(新)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단명했던 나라의 황제 왕망(王莽)은 경제정책을 철저히 하고자 해서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렸거니와 그 허두에 이런 귀절이 나와 있다.
"소금은 식효의 장(食肴之將)이요, 술은 백약의 장(百藥之長)이자 연회의 기호품이며 쇠는 농사의 근본이니라."
그는 소금과 술과 쇠를 정부 사업으로 삼았기에 그 물건들의 요긴함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는 어찌하여 그렇게 단명하였던가?
애제(哀帝)가 죽자 그의 외척들에 의해 조정을 쫓겨났던 왕망이 다시금 대사마(大司馬)의 자리에 앉았으니 군사와 정사의 대권을 쥔 최고관으로서 어린 평제(平帝)를 제위에 올렸다. 당시 백성들은 모든 것을 잃고 얻는 것이 없으며 죽는 수는 있어도 살 수는 없다고 일컬어질만큼 궁핍한 사회였다.
왕망은 이윽고 제 딸을 평제의 아내가 되게 했으나,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약주라는 초주(椒酒)를 12세 난 평제에게 올려 독살하고 보다 조종하기 쉬운 두 살 난 아기를 내세우고 스스로 가황제(假皇帝)라 하더니 드디어 야망을 이루어서 황제가 됐던 것이다.
그는 유교의 성전인 주공(周公)을 이상으로 하여 신성한 정치를 펴려 했으나 관리들은 큰 장사치들과 결탁하여 제도를 악용해서 돈을 벌려고 날뛰었으니 백성들은 더욱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앞서 인용한 조서를 내려 백성들의 소득을 늘리려고 했건만 백성의 생활은 악화되기만 하여 난리가 꼬리를 물더니 기어이 실각하고야 말았다.
그는 술만 마시면 공자의 말씀을 입에 올렸고, 그러면서도 재앙을 가셔주는 기적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다가 필경 온몸을 난도질 당하여 죽었던 것이다.
천하에 애주가(愛酒家)들이 곧잘 내세우는 술의 百藥之長說에는 이상과 같은 피비린 고사(故事)가 깃들여 있
다.
#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秦始皇)이 금서육경(金書六經)을 불태워 버리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한 것을 말한다.
진나라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제도를 없애고 군현(郡縣)을 두어 비로소 중앙집권의 대제국을 세워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제위를 만세에 물리려 하였다.
그러자 34년(BC213) 여러 중신들을 거느리고 함양궁(咸陽宮)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 군현제의 입안자였던 재상 이사(李斯)가 말하였다. 군현제의 부당론을 편 선비에게 대한 반론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태평천하가 이룩되었는데도 나라의 법률과 문교정책을 헐뜯고, 조정에서는 입을 다물었다가도 항간에 나가서는 나라를 비난하며, 더구나 제자들을 거느리고 도당을 결속하는 선비가 있습니다. 그런 무리야말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후환이 있을 것인즉, 백성들에게 없어선 안될 의약, 점술, 농사 그리고 우리 진나라의 기록 이외의 서적은 모조리 불태우도록 하소서. 시경이며 서경을 얘기하는 자에게는 기시(棄市, 사형하여 시체를 노천에 공개하는 것)의 형벌을 내리시고, 옛날과 견주어서 오늘날을 비난하는 자는 멸족을 시키시고 또한 이와 같은 금법을 어기는 자를 검거하지 않는 관리도 같은 형벌로 다스립시다."
시황제는 이 말을 받아들여 천하의 소중한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태워버리게 하였다. 그는 또한 항간에다 정보원을 풀어놓아 나라를 비방하는 선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잡혀온 선비들은 모두 죄를 면해 보려고 다른 선비를 찍어대니, 연루된 자 4백 6십 명에 달하여 모조리 생매장함으로써 천하에 본을 보였다.
그 희생자가 거의 유학자였기에 이 포학(暴虐)을 갱유(坑儒)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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