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새 카테고리 '유모어의 한국학'을 열면서/희청군성(喜聽裙聲)/면취유밀(面取油蜜)

如岡園 2015. 3. 16. 12:20

'유모어의 한국학'을 열면서 

        

 유모어는 익살스러운 말이나 익살스러운 외양이나 행동양식에 붙여지는 말로, 웃음을 본질로 한다.

 유모어 즉 해학(諧謔)에서의 웃음은 멸시와 악의가 섞인 조롱의 웃음이 아니라 무해한 익살의 웃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즐겁게 하고 흥겨움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특히 조선조 후기 양반의식의 논리는 현실비판적 평민의 속물적 논리에 의해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과장을 통해서 현실을 긍정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자유의 웃음이 아니라 조롱과 풍자가 동반되고 슬픔을 웃음으로 호도하려는 한국 특유의 유머어를 낳았다.

 한국토착 해학의 書라고 할 수 있는 十大奇書(徐居正의 太平閒話, 宋世琳의 禦眠楯, 成汝學의 續禦眠, 姜希孟의 村談解이, 洪萬重의 蓂葉志諧, 副墨子의 破睡錄, 張漢宗의 禦睡新話, 작자 미상의 醒睡稗說, 攪睡잡史, 奇文 등)를 통해 보면 우리 조상이 결코 시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엔 우리 민족의 생활사가 맥맥히 물결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우리 선민이 체질적으로 지닌 바 있었던 풍부한 지혜와 가멸찬 슬기로움과 날씬한 기지, 뼈를 깎는 풍자, 심원한 해학, 허탈한 자조(自嘲), 포복할 골계, 경탄할 만한 임기응변, 그밖의 간교한 미학과 용맹스러운 기략이 창일(漲溢)함을 본다.

 이는 곧, 멸하지 않을 영원한 아침의 나라, 메가 빼어나고 물이 맑은 나라에서 살아온 백성의 시심(詩心)이 발현된 문화적 유산임이 분명하다. 그 속에는 가지가지 생활의 편린이 움직이고 우리 민족의 일거수 일투족이 생생하게 호흡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유모어의 한국학'에서는 趙靈巖 譯編 <古今笑叢>을 대본으로 하고, 그 중에서 비교적 골계성(滑稽性)이 뛰어난 것 만을 발췌하여 수록하기로 한다.

 

          # 희청군성(喜聽裙聲)

 정송강(鄭松江) 유서애(柳西崖)가 일찌기 나그네를 교외로 보낼쌔, 때마침 이백사(李白沙), 심일송(沈一松), 이월사(李月沙) 등 세 사람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술이 얼큰해지자 서로 소리(聲)에 대한 품격을 논하였는데 먼저 송강이 

 "맑은 밤 밝은 달에 다락 위에서 구름을 가리는 소리가 제일 좋겠지." 하니 심일송이

 "만산 홍엽인데 바람 앞에 원숭이 우는 소리가 제격일 거야." 이에 유서애가

 "새벽 창 가 졸음이 밀리는데 술독에 술 거르는 소리가 으뜸일 거야?" 하매

 "산간초당에 재자가 시 읊는 소리가 아름답겠지." 하고 월사가 말하니

 "여러분의 소리 칭찬하는 말씀이 다 그럴 듯하기는 하나, 그러나, 사람으로 하여금 듣기 좋기로는 동방화촉(洞房花燭) 좋은 밤에 가인(佳人)이 치마끈 푸는 소리가 어떠할꼬?"

 하고 백사가 웃으면서 말하니 일좌(一座)가 모두 크게 웃었다.    <蓂葉志諧>

 

          # 면취유밀(面取油蜜)

 현묵자 홍만종의 장인 정상공(鄭相公)이 관서에 안찰사로 있을 때, 북경 가는 사신이 평양에 왔으므로 장인이 대연을 베풀어 이를 위로할 때, 홍분(紅粉)이 자리에 그득하거늘, 한 기생이 얼굴에 주근깨가 많으매 서장관(書狀官) 이모(李某)가 희롱하여,

 "네 면상에 주근깨가 많으니 기름을 짜면 여러 되가 나오겠구나."

 하고 말하니,

 그때 서장관 이모는 마침 얼굴이 몹시 얽은 위인이라 기생이 응구첩대에

 "서장관 사또께서는 면상에 벌집이 많으시니 그 꿀을 취할진대 여러 섬 되겠소이다."

 하거늘, 서장관 이모가 대응할 말이 없었다.

 장인이 그 기생의 응구첩대에 감탄하여 많은 상금을 주었다 한다.    <蓂葉志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