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주합래(賊主蓋來)
도둑놈 하나가 밤에 부잣집에 들었거늘 주인이 잠을 깨니, 도둑이 담을 넘어 조그만 초갓집 안으로 피신했것다. 가난한 부처(夫妻)가 함께 방에 있다가 그 지아비가 처를 향하여
"이웃집 개가 짖은 뒤에 우리집에 인적기가 있으니 이게 혹시 도둑이 아닐까?"
하니 처가 이르되,
"내일 양식이 없으니 온집안을 뒤진들 무엇을 도둑질해 가겠소?"
하고 대답하니, 이 소리를 도둑이 듣고 가엾이 생각하여 품속에 지녔던 돈 다섯 냥을 집 밖에 두고 갔었다.
이튿날 아침 주인 부처가 그 돈으로 쌀과 찬을 사서 여러 날을 잘 지냈는데, 그 후에 또 양식이 떨어지니 그 처가 탄식하면서,
"이와 같은 때에 또 도둑놈이나 한번 오셔 주시지 않나......?" 하였다. <禦睡錄>
# 기가포폄(妓家褒貶)
어느 촌가의 기생이 집으로 찾아오는 나그네를 접대할 때 대개가 한두 번씩은 상관한 위인들이었다.
한 사람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 뒤에 오는자가 연속하여 마침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들어오는지라,
"마부장(馬部長)과 우별감(禹別監)이 오시는군."
얼마 후에 또 두 사람이 들어온즉 기생이,
"여초관(呂哨官)과 최서방이 또 오시는도다."한데,
맨 먼저 온 자가 가만 바라보니, 지금 들어온 네 사람의 성이 혹은 김씨요 혹은 이씨로서, 마씨니 여씨니 우씨니 최씨니 하는 성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 네 사람이 각각 돌아간 후에
"네가 나그네들의 성씨를 그토록 모르느냐?"하고 그 기생에게 물은 즉,
"그분들이 다 나하고 친한 지 오래된 사람들인데 모를 리가 있소이까? 마씨, 여씨 등의 성을 붙인 것은 야사표폄(夜事褒貶)으로서 제가 지은 별호들이올시다." 하고 이어 해석하는데,
"그중 아무개는 몸과 더불어 양물(陽物)이 아울러 크니 성이 마(馬)씨인 것이 분명하고, 아무개는 몸은 작으나 그것은 몹시 크니 성이 여(呂)씨요, 또 아무개는 한 번 꽂으면 곧 토하니 성이 우(牛)씨요, 아무개는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렸다 하기를 변화 무쌍하니 최(崔)씨라. 최는 곧 작(雀)이라(참새는 아래 위로 잘 오르내리니까)."
이에 먼저 와서 앉은 자가
"그럼 나는 무엇으로 별호를 주겠느냐?" 한즉,
"나날이 헛되이 왔다가 헛되이 가서 헛되이 세월만 보내니, 마땅히 허생원(許生員)으로 제(題)하는 것이 적격일까 하오."
하니 재기(才妓)의 면모가 약여(躍如)하였다. <禦睡錄>
오신대납(吾腎代納)
나이 늙은 능관(陵官)이 능지기 한 놈을 보고 이르되,
"내 이미 이가 없으매 굳은 물건은 씹어 먹을 수 없으니, 내일 아침 반찬에 부드럽고 연한 물건으로 바치되, 저 생치(生雉)나 송이 등속이 내 식성에 맞느니라." 하니
능지기가 부복하여 대답하고 나가면서
"온 영감도...... 생치쯤이야 글쎄 닭을 대신하면 될 테고, 송이야 어찌한담. 옳지 내 신(腎)으로써 대신 드리면 되겠군......주릴할 쳇." 하고 중얼거리더라.
능관의 주문도 주문이지만 능지기의 독백도 영완(獰頑)하더라. <禦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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