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환희처녀(歡喜處女)/발치여산(拔齒如山)/양처무신(良妻無信)

如岡園 2015. 6. 25. 21:52

          # 환희처녀(歡喜處女)

 옛날에 과년한 처녀가 약혼이 성립되어 폐백을 받은 후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뒤보러 가서도 손가락을 꼽아 성혼의 날짜를 셀쌔, 이에 강아지에게까지 자랑해 가로되

"강아지야! 아무날은 나의 혼인날이란다."

 강아지가 마침 입을 열어 하품을 하니, 처녀가 맹세해 가로되

 "만일 그 날이 내 혼사날이 아니라면 내 참으로 네 딸이라 할 것이다."

 하였다.

 

 부묵자(副墨者) 가로되, 그 혼사날이 하도 기뻐서 강아지를 대하여 자랑하니 가히 그 정욕의 움직임을 볼 따름이라, 이는 뽕나무 속에서 고추를 따는 것이니, 가히 동일(同日)에 말할 것이라.                  <破睡錄>에서

 

          # 발치여산(拔齒如山)

  어떤 이가 관북(關北)에 놀다가 한 기생을 사랑하여 장차 이별함에, 기생이 울면서 가로되

 "당신이 이별하고 이제 돌아가시면 뒷기약을 하기가 어려우니, 전후에 저에게 주신 물건이 비록 많다 하나, 어찌 몸의 머리카락 만한 것이 있으리까. 원컨대 그대의 이[齒] 한 개를 얻어 깊은 정을 품어두리다."

 그 사람이 감격하여 이를 빼 주고 철령(鐵嶺)에 당도하매, 머리를 돌이켜 관북의 흰구름을 응시하니 슬픔을 금할 길 없었다.

 마침 그때 나그네가 따라와 슬피 울거늘, 그 연유를 물으니 객이 가로되,

 "내 어느 기생을 사랑하다가, 이를 빼어 정을 표했던 바 아직도 능히 그 회포를 잊을 수가 없는 연고로다."

 이에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야 곧 그의 사랑했단 기생도 자기가 사랑했다는 기생이 분명하였다.

 바로 나그네의 말을 듣고 쌓이고 쌓인 정이 구름같이 사라져. 종을 보내어 이빨을 찾은즉, 기생이 한 주머니나 모은 이를 던져주며 가로되,

 "내 어느 이빨이 너의 상전의 것인지 모르겠으니, 네가 모름지기 가리어 가져가라."

 하였다.

 

부묵자 가로되, 슬프도다! 창기란 물건은 앞문으로 불러들이고 뒷문으로 나가게 마련이니, 누구든지 지아비 될 자격이 있는 것이요, 장랑(張郞)의 여편네에 이랑(李郞)의 처가 되니, 정의(情意)가 무상하도다. 그러나 세상의 패악한 아이들은 부모를 돌아다보지 않고 조강지처를 버리어 기막힌 치장으로 성기(聲妓)에게 빠져 버리어 춘풍추월을 등한히 헛되게 보내다가 돈떨어지고 정이 성글어지는데 미쳐, 청루(靑樓)와도 어긋나서 수틀려지매, 비로소 누더기옷이나 겨우 입고 지내는 본처를 찾아가 도도히 싸우기만 한다. 한심스럽고 또한 웃지 않을 수 없도다. 때때옷 꽃버선이 애오라지 나를 즐겁게 한다 하니 도리어 이를 경계할지니라.                   <破睡錄>에서

 

          # 양처무신(良妻無信)

 옛날에 봄놀이 하던 여러 선비가 산사(山寺)에 모여 우연히 여편네 자랑으로 갑과 을을 정하지 못하더니,

 곁에 한 늙은 스님이 고요히 듣고 있다가 한참 만에 길이 탄식하며 가로되,

 "여러분 높으신 선비들은 쓸데없는 우스개소리를 거두시고 모름지기 내 말씀을 들으보시오. 소승은 곧 옛날의 한다 하는 한량이었지요. 처가 죽은 후 재취하였더니 재취가 어찌 고운지 참아 잠시도 떨어지지 못하고 다정히 지내다가, 마침 되놈들이 쳐들어와 크게 분탕질이라. 사랑하는 아내한테 빠져 능히 창을 잡아 앞으로 달리지 못하고, 처를 이끌고 도망치다가 말탄 되놈에게 붙잡힌 바 되었는데, 되놈이 처의 아름다움을 보고 소승을 장막 아래에 붙잡아 매고, 처를 이끌고 들어가서 함께 자거늘, 깃대와 북이 자주 접하매 운우(雲雨)가 여러 번 무르익어 남자도 좋아하고 계집은 기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어 더럽더니, 밤중에 계집이 되놈 장수에게 '본부(本夫)가 곁에 있어서 마침내 편안한 마음으로 하기 곤난하니 죽여 없애는 것이 어떠하오?' 하매, 그 두목이 '네 말이 옳도다. 좋아! 좋아!' 하니, 소승이 이에 그 그 음란한 데 분통이 터진 데다가 또한 이 말에 놀래어, 있는 기운을 힘껏 써서 팔을 펴 매어 묶은 끈이 다행히 끊어지는지라, 청룡도(靑龍刀)를 훔쳐 바로 장막 안에 뛰어들어, 남녀를 함께 벤 후에, 몸을 빼쳐 도망해 돌아가서 머리를 깎고 치의(緇衣)를 입어 구차히 생명을 보전하니,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댄 여러분 높으신 선비님들의 여편네 자랑을 어찌 가히 다 믿을 수가 있으리오." 하니 여러 선비들이 무연히 말이 없었다.

 

부묵자 가로되 슬프도다! 여인의 절개 있는 것과 음탕한 것의 같지 않음이 사람의 얼굴이 각각 다른 것과 흡사한데, 어찌 가히 비하여 같다 하리오. 또한 하물며 남의 자식이 되어 가지고, 임금의 녹을 먹고 주인을 배반하고 어버이를 버리며, 오직 처를 좇았으니, 이 사람의 죄악은 가위 위로 하늘에 통해도 오히려 허물이 남을 것이어든, 이에 도리어 남의 처 자랑하는 것이나 시끄럽게 꾸짖고 있으니, 능히 염치없는 놈이 아닐까 보냐.               <破睡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