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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白眉)/삼십육계(三十六計)/삼천지교(三遷之敎)

如岡園 2017. 5. 16. 23:00

          # 백미(白眉)

 백미란 우수한 것들 중에서 더욱 뛰어난 것을 말한다.

중국의 삼국시대- 위 오 촉 세 나라가 정립하여 싸우던 무렵이다. 

 촉나라에 마량(馬良)이라는 뛰어난 참모가 있었는데 유비가 촉한을 세우고 제위에 오르자 마량은 시중(侍中)의 소임을 맡았다. 그리하여 남방 오랑캐들을 찾아가 그들을 설득시켜서 부하로 삼을 정도의 인재였다. 

 마량은 본시 5형제였는데 모두 자(字)에 상(常)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들 5형제를 5상(五常)이라고들 일컬었다. 그들은 모두 영리하고 학문에도 능하며 고향에서 평판도 좋았다. 개중에서도 마량이 한결 뛰어났던 것이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씨네 5상은 모두 잘났지만 그 중에서도 흰눈썹(白眉)이 제일이거든".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털이 섞여 있어 그의 별명이 흰눈썹[白眉;백미]이었던 것이다.


          # 삼십육계(三十六計)

 이것은 비겁한 자를 비웃는 말로서 전법(戰法)에는 여러가지 방책이 있긴 하지만 냉큼 도망쳐서 자기 한 몸의 안전을 꾀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이다.

 이른바 남북조시대 중국의 북녘에는 위(魏)가 세력을 펴고 남쪽은 제(齊)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나라건 내분이 얽혀 있던 시절이다.

 제(齊)나라의 장수 왕경측(王敬則)은 반란군을 이끌고 서울 남경(南京)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의 황제와 오랜 분란이 계속되어 자식들도 황제에게 피살된 터였다.

 그런데 황실에서 엉뚱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으니, 왕경측이 도망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측은 진격 도중에 그 뜬소문을 듣고 분연히 뇌까렸다. 

 "송나라의 단도제(檀道濟) 장군이야말로 갖은 계략 중에서도 도주를 으뜸으로 삼았다더군(三十六策 走爲上計). 제기랄, 저희들이나 도망치지!"

 단 장군이 위나라 군병을 피했던 사실을 경측은 이 판국에 생각해 낸 것이었다. 경측은 마침내 제나라 군병에게 포위되어 도망도 못쳐보고 목이 잘렸는데 그가 뇌까린 말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진다.

 그런데 애꿎게 경측의 구설에 오른 단도제란 어떤 인물이었던가?

 그는 송나라 명장으로서 북방의 대적인 위나라 군사와 여러번 싸와 공을 세웠다. 용병(用兵)에 능하여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토도 과히 빼앗기지 않았는데 모함으로 인해서 처형되었다. 전국시대의 왕들은 자기 장군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명장 단도재가 죽자 위나라 군사 백만이 쳐 들어와 송나라 천지는 쑥밭이 되었다. 위병들은 창끝에다 갓난애를 꽂아 가지고 날뛰었다 한다. 황제는 그제서야 명장 단도재를 잃은 것을 애통해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 삼천지교(三遷之敎)

 삼천지교라 함은 아이들의 교육에 환경의 영향이 큰 까닭에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데서 자녀 교육을 위한 부모의 집념이란 뜻으로 쓰인다.

 맹자(孟子; B.C371~289)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 처음에 묘지 근방에서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무덤을 파는 인부들의 흉내만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집을 옮겼는데 그곳은 장터 근방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삿군의 흉내만 내는 게 아닌가. 맹자의 어머니는 곰곰 생각한 끝에 글방(學塾) 옆으로 이사하였다. 과연 글방에서 조상을 섬기는 것을 흉내내며 노는 자식을 보고 맹자의 어머니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맹자는 훗날 공자에 버금할만한 현철(賢哲)이 되었다.

 이 밖에도 맹모(孟母) 단기지교(斷機之敎)라는 말이 있다.

 유학을 간 맹자가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 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다. 공부를 채 마치기도 전에 돌아온 아들을 보자 맹자의 어머니는 짜다 만 베를 곁의 장도로 끊어버렸다. 공부를 중도에서 포기한다면 마치 이렇게 길쌈하던 베를 잘라버리는 거나 같다고 타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