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탈한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은 그를 더욱 증오한다.
원숭이가 이를 잡는 목적은 그것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놀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가치있는 인류학술과 지능의 특징이다. 사물 자체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고 마음 속에 유희의 감정이 존재하고 한가한 욕망이 그걸 이해하려고 한다. 결코 그와 같은 학문이 직접 우리 배를 부르게 만들어주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이것이 人性의 특징으로서 인류의 존엄에 대하여 지극히 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추구하는 방법은 일종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위대한 과학자나 발명가 및 가치 있는 위대한 사업을 이룩한 사람들은 모두 이렇다.
의학에 종사하며 연구하는 사람이 세균에 대해 가지는 흥미는 인류에 대한 흥미보다 크다
천문학자는 우리로부터 수억 리나 떨어진 별 하나의 동작을 열심히 기록한다. 이 별이 우리 인류에 대해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말이다.
모든 동물은 특히 젊었을 때는 이와 같은 유희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직 인류만이 이러한 유희적인 호기심을 값이 있는 학문의 단계까지 발전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검사원 및 우리 사상을 통제하려는 기관이나 정부를 철저히 증오한다. 나는 이러한 검사원과 통치자는 의식 무의식 가운데 인류의 지혜를 모독하고 있다고 믿는다. 만약 사상의 자유 같은 것은 인류의 지혜 가운데 가장 고귀한 활동인데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비천한 행동이다.
에우리피데스가 노예란 단어에 대해서 내린 정의는 이렇다. <사상의 자유나 의견의 자유를 상실한 사람>.
그러므로 모든 전제정치는 바로 에우리피데스 형 노예를 제조하는 큰 공장이다. 우리는 이 20세기의 세계에서 또 문화국가에서 많은 노예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모든 전제정치는 그것이 무슨 방식이든지를 불문하고 지혜의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에 있어서, 더우기 스페인의 종교숙청 시대에 있어서 더욱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근시안적인 정치가나 전도사는 신앙과 사상의 일치가 평화와 안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인 눈으로 볼 때 그 결과는 인류의 성격을 소침(消沈)케 하는 것이다.
전제자는 일반 백성에 대해서 틀림없이 극도로 경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 민족의 외형적인 행위만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사상과 신앙까지 통제하려고 한다. 그들은 일종의 왜곡되고도 유치한 생각을 가지고 인류의 지혜를 모두 이 종류의 일치된 규정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정부의 선전관이나 선전부장의 훈령을 믿고 명령에 따라 어떤 책이나 어떤 음악 또는 영화를 좋아하거나 증오하리라고 믿고 있다. 모든 전제정부는 선전과 문학을 혼합하려고 하며 살아 있는 통치자를 숭배하는 사상과 종교를 혼합해 놓았다,
어쨌든 이것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사상의 통제자가 하는 것이 인류의 천성에 대해 지나치게 위배되면 그것은 그들이 바로 실패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임금이 신하를 초개같이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처럼 본다(君之視臣如土芥 則臣視君如寇讐/孟子).
세계의 강도 가운데 우리의 사상의 자유를 강탈하는 죄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만약 우리가 사상의 자유를 상실했다면 벌벌 기어다니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두 발로 걷는 것은 잘못이니 3만여 년 전의 원래의 자세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맹자의 말에 따른다면 백성은 이러한 강도를 증오하는데, 그것은 통제자가 백성을 멸시하는 것보다 그 정도는 마찬가지로 무서운 것이요, 마찬가지로 심각한 것이다.
강탈한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은 그를 더욱 증오한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지능상의 도덕상의 또는 종교상의 그러한 신앙보다 더 값지고 개인적이며 친절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백성의 신앙과 자유를 박탈한 사람은 반드시 우리 마음 속의 가장 깊은 분노를 야기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우둔한 행위가 전제자에게는 매우 자연스럽다. 전제자는 근본적으로 지능이 퇴화한 분자이기 때문이다.
인성(人性)의 반동력과 인류의 양지(良知)의 정복될 수 없는 자유는 언젠가는 반드시 반대로 전제적 통치자에 대해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불후의 명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0) | 2021.05.26 |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0) | 2020.12.17 |
마르쿠스아울레리우스의 명상록(죽음에 대하여) (0) | 2019.11.07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죽음에 대하여 (0) | 2019.08.23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자연에 순응하는 생활에 대하여 (0) | 2018.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