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불교의 설화(4)

如岡園 2020. 7. 1. 14:49

          # 舍利佛의 歸依

  어느날 아침 佛陀의 젊은 제자 阿說示(앗사지)라는 자가 王舍城의 거리에서 托鉢을 하고 있었다. 그 태도가 하도 훌륭해서 한 修行者가 지나가다가 이윽히 바라보고 있었다,

 "만일에 이승에 한 聖者가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그이의 제자에 틀림없으리라. 대체 이 사람의 스승이 누구인지 물어봐야겠다."

 그렇지만 托鉢의 예의라는 것이 있어 탁발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젊은이가 탁발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뒤에 서 있었다.

 젊은이가 탁발을 그치고 돌아가려 할 때 수행자는 그를 불러 세우고 말을 부쳤다.

 "당신은 태도가 훌륭하고 안색도 빛나고 있는데 도대체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젊은이는 佛陀의 제자라고 대답했다.

 "그럼, 당신의 스승은 어떠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것을 아르켜 줄 수 없는가."

 그렇지만 젊은이는 아직 佛陀의 제자가 된 지가 일천하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요령있게 말할 수 없노라고 했다.

 "그럼 그 요령은 그만두더라도 그 편린이나마 佛陀의 가르침을 들려 줄 수 없겠는가"

 그때 阿說示가 佛陀의 가르침을 설명한 것은 經典에서는 다음과 같은 운문으로 적고 있다.

         

         "모든 것은 因이 있어 생기나니

          佛陀는 그 因을 說破했노라

          모든 것의 滅에 대해서도

          또한 그렇게 說破했노라."

 

 젊은이가 이렇게 설명하자 그 修行者는  그 자리에서 佛陀의 가르침을 깨닫고 佛陀에게로 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佛陀의 제1의 제자라고 일컫는 舍利佛(사아리풋타)가 바로 그 修行者였다.

 舍利佛의 벗 目犍連(못가라아나)도 그때 그와 함께 佛陀에게 귀의 했으니, 이 두 사람의 俊秀한 제자를 얻어 佛陀의 초기 전도는 더욱 활발해졌다.

 

          # 法으로 유혹하다

 불타가 왕사성에 와서 전도를 시작하자 왕사성 주민들 사이에는 한가지 불안이 생겼다. 

 양가의 자제들이 빈번히 佛陀의 문하생으로 출가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아들이 출가하고 나면 어버이들은 "沙門 瞿曇이 아들을 뺏아갔다. 사랑하는 남편이 출가를 하면 아내가 "沙門 瞿曇이 남편을 뺏아갔다."고 불평이 자자했다.

 그래서 王舍城 주민들은 "사문 구담은 良家를 斷切시킬지도 모른다."고 불안에 휩싸인 것이다.

 그 무렵 佛陀와 그의 제자들은 王舍城 교외 竹林精舍에 있었다. 제자들이 托鉢을 하기 위해 성내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그네들을 적대시하는 것이었다. 經典에서는 당시의 사실을 다음과 같은 韻文으로 기록했다.

 

     摩竭陀國의 산중의 도읍에

     크낙한 沙門이 나타나시다

     전에는 刪若(산자야)의 무리를 유인하더니

     다음에는 누구를 유혹하려느뇨

 

 산중의 도읍이란 王舍城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섯 산에 감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刪若(산자야)란 당시의 6인의 사상가(이를 六師外道라 일컫는데) 중의 한 사람인데 그때 그의 제자 250 명이 한꺼번에 佛陀에게 귀의하여 王舍城 국민에게 쎈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比丘들아, 그와 같은 비난은 길게 가지는 않는 것이다. 아마 이레쯤 지나면 사라질테지.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그대들을 비난하거던 이렇게 대답하라."

 佛陀는 韻文을 하나 지어 그들에게 가르쳤다.

 

 "如來(여래, Tathagata의 譯. 眞理에 이르는 자의 뜻. 佛陀의 존칭)는 法으러써 유혹하노니

  法에 돌아오는 것을 시기하는 자 누구뇨."

 

 거기엔 진리에 의한 자의 자신과 비타협이 보인다.

 그후 제자들은 비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운문을 가지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佛陀가 非法으로 유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王舍城의 동요도 곧장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