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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설화(3) 뱀같이 비둘기같이/피리를 불어도.../로마 法王

如岡園 2020. 12. 9. 18:03

# 뱀같이 비둘기같이

  마태복음 10장 16절에는 예수가 열두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목이 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뱀은 성서에서 악마와 동일시되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위험시되고 있는데 또 한 면으로는 지혜의 상징으로도 되고 있다. 비둘기는 하나님에 바쳐지는 단 한 가지의 조류로, 애정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대신 쓰여지고 평화와 유화의 전형으로 되어 있다. 

 

#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예수는 요한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위해 길을 내고 닦은 자이다.   예수는 그를 상찬해 마지 않았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지상의 얘기이고 천국의 사정은 좀 달라진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하지만 요한이 나타난 이후로 하나님을 믿는 자가 속출해서 천국은 지금 대번창인 것이다. 그는 진실로 최대의 예언자라 해도 과히 손색은 없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 들을 지어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를 둘러보면 이처럼 위대한 사람이 나와서 말을 해도 그 언설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없다. 그래서 예수는 매우 한탄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 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며 저희가 와서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人子(예수)는 와서 먹고 마심에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 (마태복음 11장 17절) 

 예수는 갖가지 기적을 행해도 하나님을 믿는 자가 적은 것을 한탄한 것이다. 보통으로 쓰일 때는 모든 준비를 갖추어 인도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이에 응해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 로마 法王 

 로마 법왕은 敎皇이라고도 말한다. 로마 법왕은 로마 캐톨릭교회의 수장으로 베드로의 후계자, 로마의 주교 , 크리스트의 대리자이다.

 크리스트는  사도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복음 16장 18절)라고 말해서 베드로에게 首位權을 부여했다.

  베드로는 파레스티나에서 포교를 하고 난 뒤, 주교좌를 로마에 정하고, 로마의 주교로 기원 67년에 순교했다. 그 때문에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의 후계자가 되고 로마 법왕이라고 불리워진다. 법왕은 전세계 캐톨릭교회에 대한 최고의 裁治權을 가지고 바티칸 市國의 원수이기도 하다. 또한 법왕은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고 전세계 신도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고 있다.

 법왕 선거는 초대에는 로마주교도 다른 주교와 마찬가지로 성직자 혹은 일반신도 중에서 뽑혔는데 그후 樞機卿만이 선거단체가 되고  현행 교회법으로서는 법왕은 추기경에 의한 선거회를 통해서 선거하게끔 되어 있다. 또 원칙적으로는 남자 캐톨릭신자라면  아무라도 피선거권이 있지만 실제상으로는 추기경만이 법왕으로 뽑히게 되어 있다.

 법왕 당선이 확정되면 敎皇戴冠式이 거행된다. 성베드로 대성당의 이 거식은 먼저 법왕 미사로 시작되어 대관은 성베드로광장을 바라보는 발코니에서 행해진다. 助祭樞機卿이 그때까지 법왕이 쓰고 있던 주교관을 벗기고 대신 법왕관을 씌워 준다. 그동안 운집한 많은 군중들은 키리에 에레이손(主 우리를 보살피소서)을 기원한다.

 이 대관의 날로부터 법왕의 재위가 셈해지게 된다. 교회의 최고 재결권을 가지는 법왕은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정하고, 어떤 책을 금서로 하고 또 교회 의식의 일부를 변경하는 등의 권한을 가지게 되며, 이들 권능은 직접으로 또는 바티칸의 각 聖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또 전세계 교도의 호소를 듣기도 하고 특정지에 사절을 파견하기도 하는데, 그 일상 생활의 대부분은 신도와의 면접으로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