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寶歸依
舍衛城 교외 祇園精舍에서 붓다는 어느날 比丘들에게 이런 신화를 들려 주었다.
"비구들아, 먼먼 옛날 神들과 阿修羅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위대한 신 帝釋(인드라=Sakka Devanam Inda의 譯. 위대한 神 인드라의 뜻)은 出陣하는 神들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 만일에 싸움에 임해 모발이 송연해지는 공포를 느낄 때엔 나의 깃발 끝을 보아라. 그대들, 내 깃발의 끝이 보이면 공포를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그대들, 만일에 내 깃발의 끝을 볼 수 없거든 파자파디天의 깃발의 끝을 보아라. 그렇게 하면 공포를 떨칠 수 있으리라.' '그대들, 또 만일에 파자파디天의 깃발이 보이지 않을 때는 바루나天의 깃발을 보라. 그렇게 하면 공포를 떨칠 수 있으리라.' '만일에 바루나 天의 깃발이 보이지 않으면 이사나 天의 깃발 끝을 보아라 그렇게 하면 공포를 떨칠 수 있으리라."
붓다는 이와 같은 신화를 이야기 한 끝에 다시 附言했다. "비구들아, 나도 역시 그대들에게 이르겠노라. '그대들 만일에 숲속에 들어가 樹下에 앉거나 빈집에 앉아 공포가 생기고 모발이 송연해지거든 그때엔 나를 생각하고 이렇게 뇌어라. -그 世尊은 如來다. 供養 받을 만한 者, 두루 깨달은 者, 지혜와 실천을 겸비한 者, 그야말로 佛陀이며 世尊이다- 라고. 그렇게 하면 공포를 물리칠 수가 있다.' '만일에 나를 생각할 수 없을 때엔 法을 외어보라. -法은 世尊에 의하여 잘 설파되었다. 현재에 果報 있음은 때를 넘길 수 없는 것, 와서 보고자 하는 것은 안온히 이끌어 가는 것이다. - 그렇게 하면 공포를 물리칠 수가 있다.' '또 만일에 법을 뇌일 수가 없을 때엔 僧伽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세존의 제자들인 僧伽는 잘 行하는 자들의 모임, 이승의 최상의 福田(거기에 씨앗을 뿌리면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는 밭. 功德이 많은 對象의 뜻으로 쓰임)이라고. 그렇게 하면 그대들의 공포도 불안도 떨쳐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佛陀는 옛 神話에 비겨 三寶歸依(三寶는 佛陀, 敎法, 僧伽)의 뜻을 밝혔다. 여기에 기술된 念誦의 내용은 三寶歸依의 表白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善知識
어느날 붓다는 釋迦族이 사는 고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阿難(아난다)이 붓다에게 묻기를,
"大德아(bhadanta의 譯. 聖者를 부르는 말. 행운 있으라는 뜻), 곰곰히 생각해 보니 우리들이 착한 동무(Kalyanamitta의 譯. 善友, 善知識의 뜻이다. 여기서 知識이란 智慧의 뜻이 아니고 '서로 아는 것' 즉 동무의 뜻이다)를 갖고 착한 동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벌써 이 성스러운 道의 반을 성취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어떻습니까."
붓다의 제자들은 이와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자신에 견주어 보고 그 소득을 밝혀 붓다의 裁斷을 구하는 것이 상례였다.
"阿難아, 그것은 틀렸다.. 그런 사고 방식은 올바르지 못하다. 阿難아, 우리들이 착한 동무를 가지고 착한 벗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성스러운 道의 半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부인 것이다."
阿難은 뜻밖의 얼굴이 되었다. 그는 착한 동무를 가진다는 일이 이 道의 반에 해당한다고 한 것이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붓다의 裁斷은 그 전부라고 하지 않는가. 阿難이 뜻밖의 표정을 짓고 있음을 본 붓다는 다시 설명을 했다.
"阿難아, 착한 동무를 가지고 착한 벗과 함께 있는 비구들은 성스러운 八正道를 배우고 마침내 성취하리라는 것을 기약하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나를 착한 동무로 삼으면 늙지 않으면 안될 몸으로도 늙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거다. 병들지 않을 수 없는 몸으로도 병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죽지 않으면 안될 인간이면서도 죽음으로부터 해탈할 수가 있다.
阿難아,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착한 동무를 가지고 착한 벗과 함께 있는 것이 이 道의 전부라는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여기서 착한 동무를 갖고, 착한 벗과 함께 있다는 것은 僧伽를 뜻한다. 성스러운 道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한다. 이리하여 이 모임의 중요함은 佛陀에도 律法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無常迅速
舍衛城의 南郊, 祇園精舍에 있을 때 佛陀는 비구들을 모아 다음과 같은 문답을 한 적이 있다.
"비구들아, 여기에 네 사람의 名弓이 있다고 하자. 거기에 한 사내가 와서 그들을 향해 호언했다. '여러분, 네 사람이 동소남북 사방을 향해 활을 당긴다면 나는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하나하나 붙잡아 오겠소.' 比丘들아, 나는 설마 그런 일이야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일에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속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大德(聖者의 존칭)아, 그 사람이야말로 대단한 속력을 가진 사람이지요. 설사 한 사람의 名弓이 一方을 향해 쏜 화살을 정말, 땅에 떨어지기 전에 붙잡는다 해도 그 사람은 대단한 속력을 갖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붓다가 비구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른바 '無常迅速'의 理致를 그네들에게 깊이 새겨 줄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비구들아, 그렇지만 그 사람보다 훨씬 빠른 것이 있다. 日月이 하늘을 달리는 속도는 더욱 빠른 것이다. 日月이 하늘을 달리는 속도보다 더욱 더욱 빠른 것이 있다. 인간의 壽命이 흐르는 속도는 일월의 그것보다 또 더 빠르다.
비구들아, 그러기 때문에 그대들은 이렇게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의 목숨이 흐르는 모습은 日月이 하늘을 가는 것보다 빠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放逸하지 말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대들은 열심히 이렇게 되어야 하느니라."
후세에 佛徒들은 이것을 '뜻이 이르지 않음은 無常을 생각치 않기 때문이니라' 하고 대단한 心得事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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