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눈물은 四海의 물보다...
舍衛城 교외의 祇陀精舍에서 어느날 붓다는 문득 비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비구들아, 그대들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四海의 물과 그대들이 아득한 과거의 생애에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며 흘린 눈물, 그 어느 쪽이 많겠는가."
붓다의 이 물음에는 이른바 윤회라는 사고방식을 배경에 두고 있는 것이다.
輪廻란, 그 始源을 모르는 먼 과거世로부터 사람은 되풀이 되풀이하며 갖가지 삶을 받아왔다는 사고방식이다. 그 아득한 過去世의 여러 생애에 있어 사람들은 누구라도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며 눈물짓지 않은 자가 없는 것이다. 그 눈물의 양과 四海의 눈물의 양, 그 어느쪽이 많겠느냐 하는 것이 붓다의 說文이다.
비구들은 벌써 윤회설을 잘 익히고 있었으므로 곧 이렇게 대답했다.
"大德아, 우리들은 여러번 가르침을 받아 잘 알고 있아온데, 우리들이 먼먼 과거세로부터 사랑하는 이와의 별리를 당래 흘린 눈물의 양이 사해의 물의 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깨달았습니다."
붓다는 비구들의 대답에 만족했다.
"착하고나 비구들아, 그대들은 벌써 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있구나. 비구들아, 우리들은 먼 먼 과거의 수많은 생애에서 몇 번이나 우리 부모의 죽음을 당했느니라. 그때마다 흘린 눈물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느니라. 그리고 우리들은 수많은 생애에서 몇번이나 우리 자식들의 죽음도 보았을게고 벗들의 죽음도 보았겠지. 그때마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자와의 별리에서 흘린 눈물은 생각컨대 四海의 물에 견주어도 그 비교가 되지도 않느니라."
붓다가 출가하게 된 동기도 인간의 유한성이 주는 苦를 벗어보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곧 無常한 존재로부터 배반당하는 슬픔을 이겨내자는 것이었다.
그 슬픔을 이겨내려면 그 슬픔으로 흘리는 눈물의 쓴맛을 통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까닭에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에 따르려는 비구들에게 여러가지 비유를 써서 無常의 인생에 쏟는 눈물의 많음, 눈물의 쓴맛을 아로새기게 하였다.
# 石山의 비유
拘薩羅國王 파사나티가 오랜만에 祈陀精舍로 붓다를 찾아왔다.
"대왕이여, 그 동안 어디로 다녀오셨습니까."
"세존아, 임금이란 주권을 잡고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그 보전의 책임을 가지고 있어 여러 가지 王事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그와같은 왕사로 해서 분주했습니다."
왕의 말을 듣고 나서 붓다는 이렇게 물었다.
"대왕이여,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신뢰하는 한 사람이 동쪽으로부터 달려와, '대왕이여, 지금 동쪽으로부터 허공처럼 커다란 산이 모든 생물을 짓누르며 이쪽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어서 몸을 피하소서'. 라고 아뢴다 합시다. 그런데 또 서쪽으로부터도 남쪽으로부터도 북쪽으로부터도 당신이 신임하는 신하가 달려와 같은 進言을 아뢴다 합시다. 대왕이여, 그것은 무서운 사태로서 말하자면 인류파멸의 時機입니다. 이런 때 왕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世尊아, 그런 사태가 되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목숨이 있는 동안 善業을 하고 공덕을 쌓는 수밖에 없지요."
"대왕이여, 이것은 부질없는 비유가 아닙니다. 나는 감히 당신에게 일컫노니, 늙음이 왕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죽음이 왕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사태에 있어 왕은 더 무슨 일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때 왕은 하늘을 처다보고 말했다.
"진실로 세존아, 말씀대로 늙음과 죽음이 커다란 바위산처럼 저의 일신에 닥쳐오고 있습니다. 이 때를 당하여 제가 더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善業을 하고 공덕을 쌓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인간이 하루하루의 일에 시달려 마땅히 해야 할 근본적인 일을 잊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된다.
# 無我
붓다는 어느 때 恒河 가의 마을 아욧자에서 강물을 보고 비구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無常이라든가 無我라는 사고방식은 붓다의 설교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지만 미묘한 개념이기 때문에 좀처럼 상대방에게 실감을 주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붓다는 恒河의 흐름을 보자 문득 거기서 無我를 설명해 줄 좋은 재료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비구들아, 여기 항하의 흐름을 보려무나. 잔잔한 물보라가 일고 있지.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물보라 그 자체란 어디에도 없느니라. 그리고 물보라의 본질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느니라. 그것은 끊임 없이 변하는 물의 形狀에 지나지 않는 것. 인간의 존재도 또한 이같으니라."
이 비유엔 붓다의 人間觀이 잘 드러나고 있다.
붓다는 인간을 물질적인 것(이것을 色이라 표현한다)과 정신적인 것(受=感覺想=表象, 行=意志, 識=判斷)으로 분석하고 그것들이 流動하는 결합통일로서 인간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거기엔 변화하지 않는 육체라든가 所有라든가 自己의 본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無我란 이와 같은 생각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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