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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無想(붓다의 後半이후)<3>, 칠불퇴법(七不退法)/최후의 遊行

如岡園 2022. 12. 15. 15:43

          # 칠불퇴법(七不退法)

 

摩揭陀國의 대신 兩行(봣사가라)라는 사람이 왕명을 받들고 靈鷲山으로 붓다를 방문했다.

 "大德아, 阿䦮世王께서는 세존이 편히 지내시고 계신지 알아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阿䦮世王께서는 지금 결연히 跋耆(밧지)를 토벌하려고 하시는데 거기 대해서 세존께서 말씀하실 게 있으시면 저에게 주십사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난처한 諮問이었다. 붓다는 그 대신의 물음엔 한마디 대답도 않았다. 붓다의 뒤에는 阿難이 서서 붓다의 등에다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붓다는 아난을 돌아보며 이야기 했다.

 "아난아, 지금도 跋耆사람들은 집회를 잘 열고 있다던가."

 "世尊아, 그들은 지금도 집회를 자주 열고 모이는 회중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가. 집회가 훌륭히 열리는 동안은 跋耆에는 번영이 기대되지. 쇠망할 걱정은 없네. 그런데 阿難아, 그들은 지금도 의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던가."

 "세존아, 그들은 지금도 힘을 합해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들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는 동안은 跋耆는 번영할테지. 쇠망할 걱정은 없네. 그런데 아난아, 그들은 옛 규칙을 지금도 잘 지키고 있다던가."

 "세존아, 그들은 정해진 일들은 어기지 않고 옛 규칙에 잘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 그런가. 그게 잘 되고 있는 동안은 그들은 번영하는 거야. 멸망의 두려움은 없네."

 이와같이 붓다는 다시 跋耆人들이 古老의 존경에 대해, 부녀자의 보호에 대해, 조상의 숭배에 대해, 聖者의 존중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물어나갔다. 아난은 그 모든 일들이 잘 행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오히려 번영만이 기대되고 쇠망의 두려움은 없다고 붓다는 裁斷했다.

 대신 兩行(봣사가라)은 붓다와 阿難의 이 대화를 阿䦮世王에게 보고했다. 왕은 跋耆를 정복할  것을 단념했다.

 經典에서는 이 대화의 7개조의 내용을 '七不退法'이라고 칭했다. 

 

 

          # 최후의 유행(最後의 遊行)

 

 붓다의 전도생활은 45년간 계속되었다. 그 긴 세월을 그는 끊임없이 正法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계속해서 걸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一處不住를 못토로 한 出家의 생활에서 旅路가 곧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傳道의 생활을 佛家에서는 遊行이라 일컫는다. 

 붓다 최후의 遊行은 王舍城에서 시작되었다. 

 "자, 雅難아. 안파랏티가로 가자."

 "世尊아,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붓다는 왕사성을 나와 북쪽을 향해 여로에 나섰다. 아난 외에도 많은 비구가 뒤따랐다. 안파랏티가에서 나란다를 지나 파타리. 어디서고 붓다는 가르침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했다. 

 파타리라는 곳은 지금의 '파트나'로서 예나 지금이나 恒河의 요충지이다. 

 붓다도 역시 그곳에서 恒河를 북쪽으로 건넜다. 

 파타리의 나룻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붓다와 비구들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었다. 거기엔 摩揭陀의 대신 雨行(봣사가라)도 있었다. 그는 붓다의 바로 뒤로 다가와 마지막 이별을 슬퍼하며 말했다.

 "世尊아, 오늘 세존이 나가시려는 이 문을 瞿曇門이라고 명명하렵니다. 그리고 오늘 세존이 건너시려는 이 나룻터를 瞿曇나룻터라고 명명하렵니다."

 지금, 이 나룻터를 앞에 하고 서 있는 붓다는 벌써 80고령, 그 몸에 걸친 것은 茶色에 가까운 누른색의 袈裟, 그 손에 쥔 것은 한 개의 鉢 뿐이다. 한 옹큼의 권세도 그이 것이 아니며 한 조각의 재물도 그이 소유가 아닌 것이다. 

 이 사람 앞에 사람들은 지금 최고의 존경을 바치며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마침내 나루를 건너 彼岸에 이른 붓다는 다시 한번 恒河가에 서서 偈를 읊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뗏목을 엮는 동안

        깊은 곳을 피해, 다리를 놓고

        훌륭히 강물을 건느는 자야말로

        건느는 者, 현명한 者라 이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