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제참과(換題參科, 제목을 바꾸어 과거에 등제하다)
해남 유생에 尹敏이란 자가 일찌기 과거에 나아갈쌔, 泰仁郡의 여러 선비들이 시험관이 사사로이 봐 준다는 말을 듣고 다 제목고치기를 청한데,
처음에
'현룡 재전(見龍在田)'으로 賦題를 삼았다가 '이집극오(以集戟烏)'로 고치었는지라.
윤민이 시부를 썩 잘 지으매, 스스로 자랑하여 반드시 들어맞는다고 하였으나, 평소에 겁이 많아 그 개제할 것을 알지 못하고, 처음의 현룡 재전의 시부를 지었더니, 그 同接이 다 시를 짓는 사람들이라. 비록 한 자리에 앉았으나 서로 묻지 아니하니, 종이에 쓰기를 반넘어 씀에 마침 한 擧子가 보고 가로되,
"오늘 題가 '以集戟烏'인데 이 벗은 어째서 '見龍在田'으로 지었느뇨?"
윤민이 가로되,
'현룡 재전'은 시관의 낸 바 제목이니 그대는 속지 말라."
擧子가 크게 웃으며 가로되,
"그대는 틀렸도다. '현룡 재전'은 처음 제목이고 '이집극오'로 고치었으니, 만장의 여러 선비가 다 '이집극오'인데 그대만 실로 모르는구려!"
윤민이 믿어지지 아니하여 이웃 동접에게 물어 가로되,
"여러분의 지은 바는 무슨 시요?"
답해 가로되,
"지금 과거장이 이미 파하게 됐는데 이제야 제목을 물음은 어쩐 일이뇨?"
윤민이 가로되,
"나는 '見龍在田'으로지었노라."
한데 어떤 이가 말해 가로되,
"금일의 제목은 '以集戟烏(이집극오)라."
하니 이웃 동집이 박장대소하며 가로되,
"현룡 재전은 몇 귀나 지었소?"
가로되,
"종이의 절반은 썼소."
하니 이웃 동접이 가로되,,
"다 쓰지 않고 안 것이 다행하도다."
윤민이 비로소 크게 놀라 가로되,
"이미 이렇듯 절반 이상이나 썼는데, 이제 가히 다 고칠 수야 있소." 하고 곧 그 제목만 떼어버리고 '이집극오'로 쓰니, 글인즉 '현룡 제전'이라. 좌우에서 보는 자가 웃으면서 가로되,
"그대는 글과 더불어 제목의 각각 다른 것을 근심치 않는구나!"
하고 모름지기 榜 붙을 것을 기다리었더니,
윤민이 가로되,
"무엇을 일름이뇨?"
가로되
"試官이 셋인데, 그 하나는 私를 써서 여러 선비에게 해괴함을 보임에 기운을 뺐고, 머리를 줄이게 함이요, 또 하나는 겨우 실학으로써 요행히 登科함에 나이가 이미 소모됐고, 또 하나는 본시부터 문자를 아지 못하여 비록 닭을 그리더라도 오히려 가히 참례함이어든, 용과 더불어 가마귀를 저가 어찌 분간할 수 있으랴. 윤민의 그 제목을 바꾸어 쓴 것이 얻은 바니라."
드디어 그 방이 나붙음에 윤민이 과연 參榜[합격]이 되었었다.
야사씨 가로되
근대 考官이, 글에 능한 자도 오히려 낙방을 근심했거든 하물며 글에 능하지 못한 자라. 오직 그 용과 가마귀를 가리지 못하는 자가 많은 고로 黃鐘을 깨뜨려 버림에 瓦釜가 천둥같고 시시한 구슬을 진장하여 璞玉(박옥)이 천하게 보이니, 진실로 개탄치 않을 수 없도다. 슬프도다. 세상에 빨리 登科한 자는 어찌 다못 하나의 尹敏이 뿐이리오.
<蓂葉志諧>
# 시학포복(始學匍匐, 엉금엉금 기는 것을 이제 겨우 배우다)
묵재 홍언필과 인재 홍섬의 父子가 함께 榮貴하게 되어, 한 때에 영달하였거늘, 인재가 계집종들을 즐겨 상관하더니,
하루는 여름밤에 여러 女婢가 흩어져 廳房에서 누어자거늘, 인재가 그 아내의 잠이 푹 든 틈을 타서, 벌거벗은 알몸으로 가만히 나와 여러 여종 가운데를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그가 늘 사통하던 여종을 더듬어 찾더니, 그 아비 묵재가 마침 잠이 깨어 방안을 둘러보고 그 부인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섬이 이미 몸이 장성한 것으로 알것더니, 이제야 비로소 엉금엉금 기는 방법을 배웠군요,"
한데, 인재가 이 소리를 듣고 놀래고 부끄러워 달아났었다.
대개 어린 아이가 능히 서지 못하여 기어서 무릎으로 다니는고로 이름이니, 한때에 전하여 듣는 이 모두 웃었다.
<蓂葉志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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