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관승지(郎官勝地, 낭관의 승지강산)
옛날에 두 재상이 우연히 한 곳에 모였더니, 다 일찌기 영남 방백(嶺南方伯)을 지낸 일이 있는지라, 그 한 사람은 진주 기생을 사랑했으므로 촉석루로써 승지 강산이라 하고, 딴 이는 밀양 기생을 사랑했으므로 영남루로써 가장 좋다 하여, 서로서로 자랑하며, 바야흐로 우열을 결하지 못하거늘,
자리에 한 낭관이 있어 또한 일찌기 이내 본도(本道)의 半刺를 지낸 바 있는지라, 二公의 말을 듣고 이에 가로되,
"영남과 더불어 촉석은 비록 성지의 경개가 있으나, 제가 본즉, 다 尙州의 松院만 같지 못합니다."
하니,
이공이 놀라 가로되,
"송원으로 말하면, 거친 언덕 끊어져 후미진 사이에 있고, 논과 밭두렁의 위에 있으니 먼 산과 큰 들의 아래들이 없을 것이고, 대나무와 저녁 연기의 멋이 없을지니, 족히 올라 조망하여 흥을 돋구기 어려울지나, 그대의 말이 이에 이르렀으니, 대체 무슨 별다른 얘기라도 있느뇨?"
낭관이 가로되,
"생이 남쪽으로 놀며 정을 상주의 기생에게 두었더니, 마침 돌아오는 길에 거연히 이별치 못하고 말을 함께 몰아 서쪽으로 가서 송원에 이르른즉, 날이 이미 져서 어두워 오는지라. 찢어진 창 허무러진 집에 베개를 나란히 하여 누울쌔, 가을비는 하늘에 뿌리고 미풍은 잎새에 불어오는지라, 전전히 잠들지 못하매 그토록 좋은 밤이 쉽게 밝아 새벽이 되니, 서로 이별함에 미처 말머리가 문득 나누어지거늘, 쇠잔한 메, 끊어진 골짝에, 열 걸음에 아홉 번이나 뒤돌아 보더니, 嶺을 넘은 후로 날이 가기를 이미 여러 날 지냈으되, 그 언덕 쓸쓸 황야의 정경이 이제에 이르도록 새록새록 눈앞에 아른거릴 따름이오. 촉석루와 영남루는 일찌기 꿈에도 한 번 나타나지 않으니,어찌 송원(松院)의 승경이 멀리 촉석, 영남에 지나지 않으리오."
한즉, 二公이 배꼽을 잡으며 가로되
"그런즉 송원은 곧 낭관의 승지강산이요, 촉석과 영남은 우리 양인의 승지강산이니까!" 하였다.
<蓂葉志諧>
# 사노옹벽(士奴甕癖, 사노의 괴벽)
한 선비가 두 벗과 더불어 셋이 앉았더니, 선비가 가로되,
"사람이 다 한가지의 괴벽이 있으니, 우리 한번씩 말해 보자!"
한 벗이 가로되,
"나에게 한 가지 괴벽이 있으니 바야흐로 춘삼월 꽃필 적에 소년 몇 사람으로 더불어 팔을 잡고 나아가서, 산꼭대기에 서서 영로(鈴盧)를 방산하고 화충(華蟲=꿩)을 들추어서 일으켜, 빛나는 깃을 찬란케 하는 자가 숲 사이에 날아 나온즉, 금 눈동자 칼살깃이 빠르기가 번갯불과 같아서, 繡領을 靑崖碧溪의 가에 잡다가, 이에 세 번 냄새 맡고 나아가며, 다시 이끌어 깎지끼는 것이 이것이 나의 괴벽이로다."
한 벗이 가로되,
"나 역시 한가지 괴벽이 있으니, 천금을 기울여 준마를 사매, 용의 몸, 봉의 가슴, 안개같은 앞머리, 바람같은 말갈퀴, 귀는 批竹과 같고, 눈은 샛별과 같고 금으로 된 고삐로 들리며, 옥으로 된 안장으로 치장하여 속에 산호보배를 박은 채찍을 잡고, 말을 달려 향내나는 거리에 수놓아 누비질 하듯 달리는 것이 나의 괴벽이니라."
한즉 선비가 가로되,
"나에게도 한 괴벽이 있으니 두 벗의 것과 다르도다."
두 벗이 가로되,
'무엇이뇨?"
선비가 가로되,
"나에게 종놈이 하나 있으니 그의 처가 심히 아름다운지라. 진실로 이른바 진흙 구덩이에 핀 흰 연꽃이요, 똥무더기 속의 구슬과 같은 꽃이라, 대하면 마음이 혼미해지고,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거늘, 다시 깊이 사람 고요한 곳과 밤깊어 별들이 움직일 때에 가만히 더불어 講歡한즉, 이 즐거움은 말하기 어려우니, 이것이 나의 괴벽이로다."
한데 때에 선비의 종이 가만히 엿듣고 앞에 나와 고해 가로되
"소인에게 주인님은 진실로 옹벽(甕癖)이 올시다." 하니,
대개 옹벽이란 속어에는 "몹시도 답답한 말"이라, 두 벗이 허리를 꺾더라.
<蓂葉志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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