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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역사와 일화(8), 萬物은 流轉한다

如岡園 2024. 1. 10. 21:07

          # 萬物은 流轉한다

 

 이 말은 플라톤의 크라튜로스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헤라크레이토스는 거기서 먼저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옮아가며, 무엇 하나 정지해 있지 않다". 다시 존재를 강의 흐름에 비유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즉 강물과 같이 만물은 유전(流轉)하며 같은 강이라고 해도 실은 매초마다 달라지고 있다. 사람의 몸 역시 그러하며 현재의 나는 한 시간 한 순간 전의 내가 아니다. 변화야말로 만물의 불변의 모습이다. 

 이는 불교와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으며, 헤라크레이토스가 소아시아 西岸의 희랍인 마을 에페소스에서 가르침을 편 것이 기원전 500년 경이라고 하니, 석가와 거의 비슷하다. (석가는 기원전6세기 중엽에 태어나서 530년 경 成道했다.) 그러나 헤라크레이토스는 석가모니처럼 인격이 원만하지 못하고 보다 더 奇矯하며 홀홀히 다룰 수 없는 기골을 지니고 있는 듯, 그리고 인간미도 풍부했다. 하지만 그의 눈매는 날카로워서 말하자면 우주의 오묘함과 인생의 진실을 꿰둟고 보는 감이 있었다. 

 헤라크레이토스는 타레스를 시조로 하는 이오니아의 자연 철학자 계열에 속한다. 타레스란 천문에 열중하여 별을 보고 걷다가 도랑에 빠졌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대체로 이러한 철학자들은 기인이나 별난 사람이 많았고, 헤라크레이토스 역시 평소의 사람들로부터 '음울한 사람', '울기 잘하는 철학가'로 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통 이해가 가지 않으며, 언제나 비판적인 소리만  늘어놓고 울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 한 마디가 一派의 철학을 만들어 내기에 족하리만치 함축성이 있었고 인생의 진실을 파헤치는 점이 많음은 실로 경탄할 정도였다. 이를테면 '신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美요 善이요 正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중의 어느 것은 不正이라 하고 어느 것은 正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知는 오직 하나, 만사에 형통하며 만사를 다루는 하나의 의지를 인식하여야 한다.'는 따위는 심오한 종교 사상을 지니고 있다.

  그의 말로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博學은 분별을 가르치지 않는다', '원숭이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인간에 비교하면 못생겼다., '숨은 調和는 들어난 조화보다 낫다', '개는 모르는 사람을 보면 짖기 마련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