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인간 생활의 감성의 세계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심령에 작용하여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정신적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정열의 표현이며 날카로운 비판이며 도덕에 대한 비평이며 동시에 인생의 기록인 문학은 우리의 정신이 안주할 유토피아로서, 어떠한 감각의 장벽도 문학 속에 스며든 향기롭고 우아한 이야기를 가로막지 못합니다.
중국의 <시경>이나 신라의 <향가>와 같은 고대시가에서부터 까뮈의 <페스트>나 헤세의 <데미안>에 이르기까지 문학 작품은 그 시대나 또는 동경하는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의식이나 오욕칠정에 도사린 생활 감정이 표현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시경이나 향가에서는 당시를 살다 간 중국인과 신라인들의 의식이나 사상과 믿음, 꿈, 삶의 희로애락이 형상화되어 있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에는 이별의 정한이 부각되어 있으며, 이광수의 <무정>에는 교육과 과학의 입국으로 내일의 지평을 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채만식의 <태평천하>에는 풍자적으로 식민지 치하를 태평천하라고 규정하는 시대의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까뮈의 <페스트>에는 매커니즘에 짓밟히는 현대의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구제의 길을 찾으려는 현대인의 의식이 아로새겨져 있고, 헤세의 <데미안>에는 소용돌이치는 현대에 살면서 유토피아적인 내일을 그리는 인간의 희구가 그려져 있습니다.
언어예술로서의 문학은 우리 인간에게 과연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학에 접하는 우리들의 관심사일 수 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심심풀이의 한 방편으로 가볍게 볼 수도 있고, 문학에의 탐닉이 곧바로 인생의 탐닉이라는 자못 심각한 각도에서 문학의 영향력을 펼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주는 영향력은 다방면에서 나탄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나치의 포위망에 든 러시아의 한 도시 레닌그라드에서였습니다. 적에 의해 퇴로가 차단된 이 도시에 북국의 긴 겨울이 찾아와 먹을 것 입을 것은 물론 땔감도 제대로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독일군의 장거리 포는 수시로 이 거리 저 거리에 떨어져 터지고 있어 문자 그대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 죽음과 기아의 도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가 구출된 직후 어느 잡지사의 기자가 이 소녀에게, "가냘픈 몸으로 그 어려운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비밀이 무엇이었던가."고 질문을 던지자, 소녀의 대답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책을 읽었어요.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홉 등의 작품을 읽고 또 읽었어요."
이것이 바로 언제 그의 목숨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소녀가 취한 행동의 전부였습니다.
문학의 기능을 논급하는 경우에 예화로 자주 인용되는 한 에피소드이지만,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흔히 심심풀이로만 생각되는 문학의 기능이 정작 어떠한 형태의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인생의 표현이고,문학의 기능은 위대한 인생의 의미를 교시하며 인생에 즐거움을 더하는 데 있습니다만, 인생에 있어서 문학이 주는 더 큰 힘은, 풍부한 정서와 감동을 주는 데 있을 것입니다.
정서는 부단히 변화하는 경험의 영속이기 때문에, 문학은 시간과 시대를 초월하여 읽히고 또 읽히는 것이며, 동시에 항구적인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위대한 문학일수록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고 번번이 감명을 주며,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가도 영원히 전승되는 것입니다.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는 물론 단테의<신곡>, 밀턴의<실락원>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리어왕>, 괴테의 <파우스트>,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죠프가의 형제>등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계속 읽히고, <가시리>나 <춘향전>이나 <심청전>이 감명을 주는 까닭은 그러한 작품들이 정서를 다루고 있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나 미움, 슬픔과 기쁨, 공포와 경이, 노여움과 반가움 등 문학의 정서는 역사와 사회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본질입니다. 개개의 정서는 순간적이지만 인간 정서의 일반 특징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머 시대의 사랑과 단테의 사랑과 오늘날의 사랑은 다른 것은 아니며, 서구인의 감정과 아프리카 토인의 감정과 우리의 감정이 근본에 있어서는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문학, 생명 있는 문학은 시간적으로 영속하고, 공간적으로 보편성을 띠고 모든 인간에게 정서적 감동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의 정서적 감동은 서구의 고전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우리다운 정서는 우리의 고전 작품에서도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가시리>에서의 이별의 정한이나 <정읍사>에서의 남편을 염려하는 참다란 여심이며, <서경별곡>에서의 사랑의 맹서나 정념은 그대로 우리 문학 작품의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문학 작품을 통하여 감동을 얻고, 그러한 감동을 통하여 인간성이 풍부하게 자랄 때. 인생에 있어서 문학은 지식의 흡수나 사랑의 배양만을 넘어선 정신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여 강 김 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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