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172

서양의 역사와 일화(15)/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 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로마는 기원전 6세기 경부터 공화제를 채택, 차츰 세력을 더해 갔다. 265년에 이르러서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완성했는데, 그 결과 당시 지중해의 최강국이었던 카르타고와의 사이에 격심한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카르타고는 해양민족이었던 페니키아인이 북아프리카의 한 모퉁이에 植民하여 건설한 소수 전제의 국가로, 또 상업국으로 번영을 자랑함과 아울러 그 당시로서는 최대의 해군력을 누리고 있었다.  시실리섬의 이탈리아인이 시라쿠사의 압력을 받자, 처음에는 카르타고에게, 후에는 로마에게 구원을 청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두 나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것이 포에니 전역의 시작이며 이후 두 나라는 세번에 걸쳐 숙명적인 대결을 되풀이 하게 되었다. 제1차 포에니 ..

서양의 역사와 逸話(14), 골디우스의 매듭

# 골디우스의 매듭  페르샤의 싸움을 전후한 시기는 그리스의 황금시대였다. 특히 아테네는 번영의 정점에 달하여 있었으나, 곧  스파르타와 대립이 격화하여 전후 22년에 걸친 페르포네소스 戰役이 발발하였다. 기원전 4세기 전후는 그리스 도시국가 사이의 분열 항쟁이 가장 격심하던 시대였다. 처음에는 스파르타가, 후에는 테에베가 유력했는데, 만성적인 전쟁상태로 말미암아 농업은 황폐하고 도시국가 내부에서도 당쟁의 결과 다수의 시민이 망명했으며 화폐경제가 진전됨에 따라 빈부의 차가 심해졌고 금전에 팔려가는 傭兵제도가 유행하는 등, 도시국가의 생활은 급속도로 허물어져 갔다. 이 무렵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북방에 있던 마케도니아인이었다.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 왕 피리포스 2세가 그리스에 침공하자..

서양의 역사와 일화(13), 아우레카-발견했다/幾何學에 王道는 없다

# 아우레카-발견했다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의 철학자 알키메데스(기원전 187-212)의 말이다. 시라쿠사의 군주 히에르 왕은 순금의 덩어리를 직원에게 주어서 왕관을 만들었는데, 완성된 왕관에 불순물이 들어있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알키메데스에게 조사하라고 명했다. 왕관을 부셔서 분석할 수도 없는 일이라, 알키메데스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느날 목욕탕에 들어갔더니 더운물이 물통 가득히 차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자 물이 넘쳐 흘렀다. 그 순간, 어떤 인스피레이션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물 가운데 물체를 넣으면 같은용량의 물이 배제된다. 금은 은보다 무거우니까 같은 무게의 은 덩어리는 금덩어리보다 많은 물을 배제할 것임에 틀림 없다. 이것이 소위이다. 알키메데스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너무나도 기쁜..

서양의 역사와 逸話(12), 통 속의 哲學者

# 통 속의 철학자 고대 그리스의 큐니크派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집이 아니라 통 속에서 살았다. 큐니크派란 희랍어의 큐니코스(개와 같은)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犬儒學派라고 번역된다. 그들은 세속적인 습관, 형식 등을 무가치한 것이라 하여 경멸하고 반문명적, 반사회적, 이를테면 개와 같은 원시적 간이생활을 실행에 옮겼다. 라는 말은 디오게네스가 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는데, 습관이 지니는 구속력이 강함과 그 무의미함을 지적한 것이리라. 그들에게 있어서는 세속적으로 권위있는 것도 가소로운 환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 무렵 그리스 전토를 정복하여 득의의 정점에 있었던 알렉산드르스대왕이 디오게네스의 평판을 듣고는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이 몸소 찾아..

서양의 역사와 일화(11), 人民의 人民에 의한 人民을 위한 政治

#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 민주 정치의 이상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1809~1865)이 게티스버그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온다. 게티스버그는 펜실바니아주의 남부에 있는 도시로 남북전쟁의 싸움터였다. 이곳에서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대격전이 벌어져 북군이 대승했다. 전쟁은 그후 2년간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戰場의 한쪽에 그해 가을 남북전쟁에서 쓰러진 용사들을 모시는 국립묘지가 만들어졌고 11월 19일에 그 奉獻式이 거행되었다. 이에 링컨이 한 연설이 소위 이다. 링컨의 이 연설은 미리 예상되었던 다른 연설자가 두 시간에 걸쳐서 열변을 토한 뒤에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요청을 받고 한 것이었다. 前者의 열변은 어떠한 ..

서양의 역사와 逸話(10), 人間은 政治的 動物이다.

#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이름난 철학자다. 로마시대로부터 중세를 통하여 그의 철학상, 과학상의 권위는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만치 큰 것이었다. 중세에 있어서는 철학자라고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키고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녀에 비유될 정도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경 마케도니아왕 필리프의 侍醫 아들로 태어났다. 그 무렵 그곳에서는 경험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이며 이오니아적 자연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 영향은 훗날 그의 사상 속에서 플라톤으로부터 이어받은 형이상학적 관념론적 요소와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었다. 열여덟살 때 아테네에 나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고, 그 후 20년 가까이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학원 아카데미아에 머물러 있었..

서양의 역사와 逸話(9), 아트란티스/태양은 날로 새롭다

# 아트란티스(잃어버린 대륙) 플라톤의 대화편 등을 보면 이집트의 神官이 아테네의 賢人 솔론에 이야기했다는 형식으로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부랄탈) 바깥쪽 대해, 즉 대서양에 아트란티스라 불리우는 큰 섬이 있다고 되어 있다. 아트란티스트란 지구를 떠받들고 있다는 전설상의 거인 아트라스의 섬이라는 뜻이다. 섬에는 초록이 무성하고 금은 주옥이 풍부하며 인구가 많고 왕후는 호화로운 생활을 보낸다는 일종의 지상 낙원이었다. 이 섬의 왕은 플라톤의 시대보다 9천년 가량 이전에 지중해의 정복을 꾀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리스에게 격파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섬의 주민은 신을 받들지 않았는데, 그로 말미암아 신의 노여움을 사서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섬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고 한다. 이런 일로해서 아트란티스트..

서양의 역사와 일화(8), 萬物은 流轉한다

# 萬物은 流轉한다 이 말은 플라톤의 크라튜로스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헤라크레이토스는 거기서 먼저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옮아가며, 무엇 하나 정지해 있지 않다". 다시 존재를 강의 흐름에 비유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즉 강물과 같이 만물은 유전(流轉)하며 같은 강이라고 해도 실은 매초마다 달라지고 있다. 사람의 몸 역시 그러하며 현재의 나는 한 시간 한 순간 전의 내가 아니다. 변화야말로 만물의 불변의 모습이다. 이는 불교와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으며, 헤라크레이토스가 소아시아 西岸의 희랍인 마을 에페소스에서 가르침을 편 것이 기원전 500년 경이라고 하니, 석가와 거의 비슷하다. (석가는 기원전6세기 중엽에 태어나서 530년 경 成道했다.) 그..

西洋의 歷史와 逸話(7), 人間은 萬物의 尺度이다

# 人間은 萬物의 尺度이다 서양의 철학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은 지금껏 살아 있다. 기독교 신학도 그들을 제외하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희랍이 자립할 수 있는 철학자 혹은 좀더 넓은 의미에 있어서 사상가는, 주요한 사람만으로서도 열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보통 철학, 철학자로 번역되는 영어의 philosophy, philosopher도 그 본래의 말인 그리스語의 philosophia, philosophos는 문자 그대로 '愛知', '愛知者'이며(phillos는 친구, 사랑하는 자, phileo는 사랑한다, sophos는 친구, 사랑하는 자, phileo는 사랑한다, sophos는 현명한, sophia는 '지혜'이다). 본래 예지(叡知)나 사색 따위를 사..

서양의 억사와 일화(6),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藝術은 길고 人生 은 짧다. 詩나 노래에 무척 자주 동원되는 귀절이다. 이것은 그리스의 醫聖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생)의 말이다. 그것은 그의 맨 처음에 기록되어 있다. 보통 '藝術'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기술 특히 의술(醫術)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생은 짧지만 의술은 심오한 것이어서 도저히 구명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이에 종사하려는 자는 스스로 경계하고 게을리하지 말라.' 하는 뜻의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이 말은 다시 '好機는 날카롭고 (험준하다 혹은 寸時를 다툰다는 뜻) 試圖는 실패하기 쉬우며 판단은 어렵다. 그러므로 사람은 필요한 수단을 몸소 다할 뿐만 아니라 환자나 臨席한 자, 혹은 외계 사물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계속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판단'이라 해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