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417

젊은날의 비망록에서(41)

불운한 청춘을 위한 讚歌(3) 우리의 어제가 아무리 致命的인 것이었건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세워야 한다. 세워진 뒤의 일은 그때 가서 하자. 지금 우리에게는 세운다는 것만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황야 위에 선 우리들은 너무도 고독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어제의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더욱 속 깊이 파고 들어 있더라도 얼굴을 찡그리면서라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가슴 속 깊은 데서는 사실 늘 사랑하기를 바라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참으로 사랑할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불신에 부쳤던 것이 아닌..

젊은날의 비망록에서(40)

불운한 청춘을 위한 찬가(2) 시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리고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크고 깊었던 상처가 하루 이틀 시침과 함께 아물어 갔다. 그리고 어느듯 거리에는 예대로의 생활이 뻔질하게 넘쳐 흐른다. 파괴된 터전 위에는 어느새 고층 건물이 하늘을 가리우고 죽어간 사람들의 기억은 사진틀 속의 벽화가 되어버렸다. 어느새 사람은 전쟁 영화를 심심풀이로 멀리서 흥미있게 바라보게까지 되었다. 모든 것이 예대로 돌아간 것이다. 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다. 아벨의 핏자국처럼 남아서 엉긴채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다. 20대를 문질러버리고 허덕이며 넘은 청년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다. 차라리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그러나 허덕이며 넘긴 그 잊을 수 없는..

佛敎, 그 思想의 原理(1)/믿음은 種子, 智慧는 호미/彼岸에 이르는 길/악마와 涅槃

# 믿음은 種子, 지혜는 호미 붓다는 마갈타국의 남산기슭의 一葦(에카사아라)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이 마을은 어느 파라문의 영지로서 마침 파종 때여서 그가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여 씨를 뿌리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붓다는 의발을 정제하고 탁발을 하기 위해 그 파라문의 집 앞에 섰다. 마침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있다가 붓다의 탁발의 모습을 보자 그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沙門아,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려 먹을 것을 얻고 있다. 당신도 자신이 밭 갈고 씨를 뿌려 먹을 것을 얻으면 좋지 않은가." 그러자 붓다는 선뜻 대답했다. "파라문아, 나도 밭 갈고 씨 뿌려 먹을 것을 얻고 있다." 그 말을 듣자 파라문은 얼떨떨하게 붓다의 얼굴을 보다가, "그렇지만 우리들은 아무도 당신이 밭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우주의 지배적 이성에 대하여 미덕과 악덕의 중간에 놓여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성실과 겸손으로 자기를 빛내라. 인류를 사랑하라. 신에게 순종하라. 어떤 사람은 말한다, "법칙이 만물을 지배한다"고. "법칙이 만물을 지배한다"는 사실만 명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통에 대하여. "참기 어려운 고통은 넋을 잃게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에피쿠로스로부터의 인용) 정신은 스스로를 지킴으로써 평정을 유지하며 지배적인 이성은 고통 때문에 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에 해를 입는 부분[육체]은 그 고통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토로하는 것이 좋다. 안티스테네스(견유학파의 시조. 이 대목은 에픽테토스가 인용하고 있다)의 말. "선한 일을 하고 비난을 받는 것은 왕자..

불후의 명수필 2021.12.23

그리스도의 餘滴(1) 로마法王廳/루시풸/마돈나

# 로마法王廳 교황廳이라고도 말한다. 전 세계 캐톨릭 교도 위에 군림하는 법왕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행정의 중앙기관으로 바티칸 市國에 있다. 법왕청의 조직은 법왕의 최고기관인 추기경에 의해서 지도되며 12聖省과 재판소, 위원회, 법왕국 5局, 宮內部와 연구소로 되어 있다. 12聖省이란 신앙과 도덕의 문제를 취급하는 檢邪聖省, 주교와의 협력을 위한 敎區聖省, 라틴식 이외의 의식을 가지는 동방제 교회를 위한 동방교회성성, 七秘跡授與의 감시의무를 맡고 있는 秘跡聖省, 주교외 신도의 규율勵行을 담당한 公議會聖省, 수도자의 뒤를 돌봐주는 律修者聖省, 포교지의 행정을 담당한 포교성성, 전례, 列聖, 列福에 대해 취급하는 禮部聖省, 法王廳內의 의전을 취급하는 의례성성, 여러 나라와의 政敎條約에 관한 임시교회사무성성, ..

젊은 날의 비망록에서(39)

不運한 청춘을 위한 찬가(1) 전쟁의 아귀찬 발톱이 마구 찢고 갈갈이 헤쳐버린 폐허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젊음이 송두리째 날아간 자신의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발견하고 놀랐다. 순진무구하던 소년은 어느새 세상을 죄다 알아버린듯 노회한 청년으로 변신되어 있었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볼 때면 내 가슴은 뛰노라!' 하고 고운 꿈에 젖던 시절이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옳다.' 하던 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긍정이 한꺼번에 폭풍우 속에 흩날려 없어지고, 노을 비낀 피비릿내 나는 황야 앞에 망연히 선 청년은 "영원을 읊조리는 자를 죽여라. 인간을, 사랑을, 평화를 웅얼거리는 자를 죽여라. 오늘 나는 이렇듯 황야 위에 서 있을 뿐이다." 하고 침통하게 중얼거렸다. 성스러운 예배당의 종소리도, 은테 안경 위로 ..

妄疵取哂(망자취서)/輕侮懷慙(경모회참)/羞妓賦詩(수기부시)

# 망자취서(妄疵取哂, 죽은자를 흠함을 비웃다) 백호 임제가 글재주가 기막혀서 오성 이상공이 깊이 심복했거늘, 일찌기 한 서생이 있어 기꺼이 망녕되이 고인의 지은 바를 논하더니, 하루는 오성에게 가서 가로되, "임제의 글은 文理가 계속치 않으므로 족히 일컬을 것이 못합니다." 한데, 때에 마침 임제가 죽었을 때라, 오성이 그 망녕되이 헐어 말하는 것이 우스워서 아랫채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응해 가로되, "죽은 임제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산 임제는 진실로 헐어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 하니 듣는 이가 다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문장에는 저절로 값이 있으니, 반드시 능히 안 이후에 알 것이요, 그 경지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능히 아는 자도 있지 못하리라. 배호와 같은 자는 가위 재주가 일세에 으뜸이니 이 서생..

기독교의 설화(9), 아나니아의 거짓말/십자가는 미련한 것/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 아나니아의 거짓말 초대 그리스도 교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를 드리는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든 신도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그들이 가진 재산도 모두 제것이라 하지 않고 공유했다. 밭과 집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을 팔아 그 돈을 가져와 사도의 발 앞에 두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받았다. 그러나 아나니아라는 자는 그의 처 사퓌라와 동의해서 그가 판 밭의 금액 중에서 일부를 숨기고 나머지 돈만 베드로의 발 앞에 갖다 두었다. 베드로는 꾸짖었다. "아나니아,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일부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너의 임무로 할 수가 없더냐?"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그자리에 쓰러진 채 죽..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 우주 생성의 원인은 말하자면 하나의 격류이다. 그것은 만물을 휩쓸어 간다. 그런데 정상배이면서 철학자처럼 행동하려고 나서는 자들은 얼마나 비천한 소인인가! 모두들 철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여, 자연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라. 가능한 한 분발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여 두리번거리지 말라. 플라톤의 이상국을 기대하지 말라. 그러나 사소한 일이라도 순조롭게 진행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을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라. 누가 남의 신념을 면하게 할 수 있겠는가? 신념을 바꾸지 않고 다만 속으로는 불평하면서 복종하는 체하는 것은 노예 생활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 나에게 알렉산드로서와 필립포스와 파레론의 데메트리오스(B.C 300 년경의 아테네의 저명..

불후의 명수필 2021.11.10

젊은날의 비망록에서(38)

우리는 결코 現在의 時에 애착하고 있지 않다. 미래가 너무 천천히 오기 때문에 그 발걸음을 재촉하기나 하려는 듯이 우리는 미래를 바라본다. 또 우리는 과거를, 그 사라져감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그것을 멈추기나 하려는 듯이 되돌아본다. 너무도 조심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닌 시간 속에서 방황하고 우리에게 속하는 유일한 시간은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또 너무도 공허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존하지 않는 시간들을 생각하고, 현존하는 유일한 시간은 무반성하게도 놓혀버린다. 이것은 흔히 현재가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를 우리의 시야에서 감추려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가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이라면 그것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애석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미래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