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57

郞官勝地(낭관승지)/士奴甕癖(사노옹벽)

# 낭관승지(郎官勝地, 낭관의 승지강산) 옛날에 두 재상이 우연히 한 곳에 모였더니, 다 일찌기 영남 방백(嶺南方伯)을 지낸 일이 있는지라, 그 한 사람은 진주 기생을 사랑했으므로 촉석루로써 승지 강산이라 하고, 딴 이는 밀양 기생을 사랑했으므로 영남루로써 가장 좋다 하여, 서로서로 자랑하며, 바야흐로 우열을 결하지 못하거늘, 자리에 한 낭관이 있어 또한 일찌기 이내 본도(本道)의 半刺를 지낸 바 있는지라, 二公의 말을 듣고 이에 가로되, "영남과 더불어 촉석은 비록 성지의 경개가 있으나, 제가 본즉, 다 尙州의 松院만 같지 못합니다." 하니, 이공이 놀라 가로되, "송원으로 말하면, 거친 언덕 끊어져 후미진 사이에 있고, 논과 밭두렁의 위에 있으니 먼 산과 큰 들의 아래들이 없을 것이고, 대나무와 저녁..

환제참과(換題參科)/시학포복(始學匍匐)

# 환제참과(換題參科, 제목을 바꾸어 과거에 등제하다) 해남 유생에 尹敏이란 자가 일찌기 과거에 나아갈쌔, 泰仁郡의 여러 선비들이 시험관이 사사로이 봐 준다는 말을 듣고 다 제목고치기를 청한데, 처음에 '현룡 재전(見龍在田)'으로 賦題를 삼았다가 '이집극오(以集戟烏)'로 고치었는지라. 윤민이 시부를 썩 잘 지으매, 스스로 자랑하여 반드시 들어맞는다고 하였으나, 평소에 겁이 많아 그 개제할 것을 알지 못하고, 처음의 현룡 재전의 시부를 지었더니, 그 同接이 다 시를 짓는 사람들이라. 비록 한 자리에 앉았으나 서로 묻지 아니하니, 종이에 쓰기를 반넘어 씀에 마침 한 擧子가 보고 가로되, "오늘 題가 '以集戟烏'인데 이 벗은 어째서 '見龍在田'으로 지었느뇨?" 윤민이 가로되, '현룡 재전'은 시관의 낸 바 제..

책공소홍(責工少紅)/조각훈도(朝却訓導)/청가사취(請加四吹)

# 책공소홍(責工少紅, 주홍이 적은 화공의 그림을 책하다) 선무공신 화상에 李白沙가 다섯 가지 채색으로 얼굴을 그려 넣는 수를 보고, 화공에게 일러 가로되, "朱紅이 어찌 너무 적으뇨?" 하니, 화공이 그것이 무슨 말인 줄 알지 못하여 머리를 낮추어 가로되, "주홍은 반드시 많이 들 것 없습니다." 백사가 소리를 가다듬어 가로되, "주홍이 만약 적은즉 洪璡令公의 코를 네가 어찌 그렸느냐?" 한데, 대개 唐興公 洪璡令이 코등 끝이 크고 붉은 연고로 그렇게 말했느니라. 듣는 자 모두 웃었다. # 조각훈도(朝却訓導, 아침훈도는 볼 생각이 없다) 宋言愼이 관동伯이 되어 매양 각 읍에 순역할쌔 읍에 기생이 없은즉, 저녁에 이르러 반드시 훈도를 불러 말 속에 客枕이 심심하단 뜻으로 말했더니, 훈도가 ..

一家天子/窃婢逐盜/結婚姻

# 일가천자(一家天子, 한집안의 천자) 한 노인이 아들만 십오 형제 두었는데 항상 말하기를, "우리 집은 한 나라인데, 나로 말하면 곧 천자이시요, 나의 처로 말하면 황후일 것이요, 세 아들은 三公이요, 여섯 아들은 六丞旨요, 다음 여섯 아들은 六卿이라." 하고 무릇 집안의 政事를 稟한 후에 행하며, 형벌과 법령의 시행에는 반드시 邦典을 좇아 행하였다. 그 노인이 죽음에 다달아 처의 손을 잡고 최후의 눈을 감으며 이르되, "황후 황후여 ! 朕은 이제 장차 崩御하노라." 하고 말하니, 이를 전해 듣는 자 있어 냉소해 마지 않았다. # 절비축도(窃婢逐盜, 도적을 쫓아낸 여종) 李哥란 자가 朝官으로 있어 그 부리는 여종을 항상 훔치더니 어느날 여종을 이끌고 자기의 莊園에서 거사할쌔, 그 合歡의 형상이 숲 사이..

몽학강교(蒙學强敎)

# 몽학강교(蒙學强敎, 엉터리 학문으로 후학을 그릇가르친 접장) 옛날에 한 접장이 글뜻은 알지도 못하고 굳이 남의 스승이 되어 論語를 강의 할쌔, "공자가 가로되 道가 행해지지 않는지라, 떼를 타고 바다에 뜨리니 나를 좇는 자는 仲由뿐인져", 하는데 이르러 해석해 가로되, "공자가 뭍길로 행하기 어려운 기약이 있는 고로 물길로 좇아 떼를 타고 갔음이라." 한데, 동자가 가로되, "유(由)라 함은 무엇이오?" 가로되, "그 좇는 자를 말미암음이라는 것을 줌이니라." 동자가 가로되 "무엇이 말미암음을 줍니까?" 가로되, "물길이 뭍길보다 어려우니 여러 날 걸리기 때문에 좇는 자들이 빨래할 틈에 가히 주지 아니치 못할지니라." 대개 孔子曰의 曰자는 日자로 해석했고, 仲由의 由자는 給油의 油자로 그릇 앎이었다...

사유한(死猶恨)/운부방기(耘婦放氣)

# 사유한(死猶恨, 죽는 게 한이로다) 품성이 괴벽한 자가 있어 친소 원근을 논하지 않고, 무릇 남의 婚事에는 오직 저로 하여금 중매케 하면, 극력 강권하여 성혼케 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한결같이 혼사를 훼방하여, 사람이 다 괴롭게 여기더니, 하루는 건넌 마을 어떤 집에서 정혼했다는 말을 듣고, 곧 발분하고 팔을 저으며 가로되, "신랑집엔 저와같은 허물이 있고, 신부집엔 이와같은 허물이 있으니, 어찌 가히 성혼할까 보냐? 마땅히 가서 파혼시키리라." 하고 시퍼래 가지고 설치는데, 매운 겨울 날씨가 오히려 따뜻하고 강 얼음이 매우 엷었는데, 분이 나는 김에 엷은 얼음이 가히 두터운 줄 알고 성큼성큼 건너다가, 중간쯤 이르러 얼음이 문득 갈라지며 몸이 빠져 물 가운데 떨어져..

兩老逢辱(양로봉욕)/爲狐爲魅(위호위매)

# 양로봉욕(兩老逢辱, 두 늙은이의 봉욕) 여든 살이나 된 늙은이가 젊은 첩과 더불어 밤일을 하는데 첩이 가로되, "이 일을 한 연후에 만약 잉태하면 반드시 사슴을 낳으리라!" "어째서 사슴을 낳겠는가?" "사슴 가죽으로 일을 하시니 사슴을 낳지 않고 무엇을 낳으리오?" 이튿날에 벗과 더불어 수작할 즈음에 늙은이가 가로되, "내가 간밤에 큰 욕을 먹었노라." 하니 벗이 가로되, " 어떤 욕이뇨?" "간밤에 첩과 더불어 일을 했더니, 첩이 이와같이 말하니 어찌 큰욕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욕은 오히려 헐후한데 속하는 얘기라. 나의 봉욕은 입으로 가히 담아서 말할 수 없는 욕이니라." "어디 한 번 얘기해 보라." "내가 일전에 첩과 더불어 밤일을 하였는데, 첩이 가로되, 이것이 先塋 곁이냐 하거늘 네가..

煩簡俱迃(번간구오)/宋莫皆中(송막개중)

# 번간구오(煩簡俱迃, 이문은 번거로울 것이 아니라 간략해야 한다) 뇌계 兪好仁이 천성이 순후하고 근엄하여 문장에 능난하니 성종대왕이 가장 사랑하시었거늘, 뇌계가 校理로써 시골로 돌아다니겠다 하여 山陰縣에 나아앉았더니 워낙 吏治에 어둡고 文簿가 심상하여 능히 재단치 못하는지라. 한 어리석은 백성이 있어 "솥을 잃어버렸으니 원컨대 그걸 도로 찾아지이다." 하고 정상했거늘, 뇌계가 종일 연구해 봐도 처리할 길이 발견되지 않아, 그 백성이 오래 기다렸다가 이에 호소해 가로되, "처리해 주심을 감히 바라지 않사옵고, 오직 원컨댄 本狀이나 찾게 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데. 뇌계가 이에 난처하게 생각하고 얼마 후에 처리해 가로되, "무릇 여러 吏文은 모름지기 번거롭게 할 것이 아니요, 마땅히 간략함을 요함이..

請吏寫祝(청리사축)/添字誤下(첨자오하)

# 청리사축(請吏寫祝, 읍리에게 청하여 축문을 쓰다) 어떤 시골 사람이 글을 아지 못하는 이가 있어, 일찌기 京族들이 집안 제사 때에 축문 읽는 것을 보고 尙饗 두 자의 소리가 있는 것을 본뜨지 못하고 또한 그 흉내를 내고자 하였더니, 후에 그 아비의 忌日을 당하여 축문을 쓰고자 하나 글 아는 위인이 없는지라, 연고로 제사에 쓰려던 술과 찬수로 읍리를 교제코자 갈라 내며, 축문을 써 달라 청하여 상향 두 자를 쓰지 않았는데, 읍리가 응락하더니, 새벽에 이르러 읍리가 俗用吏文으로써 축문을 써 가지고 와서 가로되, "쓴 사람이 스스로 읽어야 된다." 하며 드디어 상 아래에 꿇어 앉아서 크게 읽어 가로되 "오늘은 네가 죽은 고로 너의 자손 등이 많이 주식을 갖추어 차려 놓았으니, 너의 부처는 아울러 와서 먹어..

심모분작(沈毛分酌)/사부전약(士負前約)/양남상합(兩男相合)

# 심모분작(沈毛分酌, 음모 한 오리를 나누어 마시다.) 호남 어느 절에서 무차대수륙재(無遮大水六齋)를 지낼 때, 남녀가 모여들어 구경군들이 무려 수천 명이나 되었다. 재가 파한 후에 나이 적은 사미승 아이가 도량(道場)을 소제하다가 여인들이 모여 앉아 놀던 곳에서 우연히 여자의 음모 한 오리를 주워 스스로 이르되, "오늘 기이한 보화를 얻었도다." 하며 그 털을 들고 기뻐 뛰거늘, 여러 스님들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함께 모여 법석이로되, 사미승 아이가 굳게 잡고 놓지 않으며 "내 눈이 묵사발이 되고 내 팔이 끊어질지라도 이 물건만은 가히 빼앗길 수없다." 하고 뇌까리니, 여러 스님들이 "이와같은 보물은 어느 개인의 사유물일 수는 없고, 마땅히 여럿이 공론하여 결정할 문제니라." 하고 종을 쳐서 산중 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