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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반친(巡使反櫬)/오비장전(吾扉將顚)

# 순사반친(巡使反櫬, 순찰사의 면례 금장) 한 순찰사가 장차 道內의 大村의 뒷산에 아비 무덤을 쓰려 하거늘 촌민이 걱정치 않는 자 없으니, 위세를 겁내어 입을 열어 말하는 자 없고, 나날이 으슥한 곳에 모여 앉아 함께 의논하기를, "순찰사또께서 만약 이 곳에 入葬하시면, 우리 대촌이 스스로 敗洞이 될 것이오. 누가 수백명이 양식을 싸 짊어지고 임금께 직소하거나 備局에 等狀하는 것이 어떠냐?"하고 紛紜(분운)할 때에 이웃에서 술 파는 노파가 이 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여러분이 사또로 하여금 禁葬케 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니, 무엇이 그리 근심할 게 있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앞에 한 냥씩만 돈을 거두어 늙은 저를 주신다면, 제가 마땅히 죽음을 걸고 금장케 하리이다." 하니, 여러 사람이 "만약 능히..

서양의 역사와 일화(8), 萬物은 流轉한다

# 萬物은 流轉한다 이 말은 플라톤의 크라튜로스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헤라크레이토스는 거기서 먼저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옮아가며, 무엇 하나 정지해 있지 않다". 다시 존재를 강의 흐름에 비유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즉 강물과 같이 만물은 유전(流轉)하며 같은 강이라고 해도 실은 매초마다 달라지고 있다. 사람의 몸 역시 그러하며 현재의 나는 한 시간 한 순간 전의 내가 아니다. 변화야말로 만물의 불변의 모습이다. 이는 불교와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으며, 헤라크레이토스가 소아시아 西岸의 희랍인 마을 에페소스에서 가르침을 편 것이 기원전 500년 경이라고 하니, 석가와 거의 비슷하다. (석가는 기원전6세기 중엽에 태어나서 530년 경 成道했다.) 그..

西洋의 歷史와 逸話(7), 人間은 萬物의 尺度이다

# 人間은 萬物의 尺度이다 서양의 철학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은 지금껏 살아 있다. 기독교 신학도 그들을 제외하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희랍이 자립할 수 있는 철학자 혹은 좀더 넓은 의미에 있어서 사상가는, 주요한 사람만으로서도 열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보통 철학, 철학자로 번역되는 영어의 philosophy, philosopher도 그 본래의 말인 그리스語의 philosophia, philosophos는 문자 그대로 '愛知', '愛知者'이며(phillos는 친구, 사랑하는 자, phileo는 사랑한다, sophos는 친구, 사랑하는 자, phileo는 사랑한다, sophos는 현명한, sophia는 '지혜'이다). 본래 예지(叡知)나 사색 따위를 사..

서양의 억사와 일화(6),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藝術은 길고 人生 은 짧다. 詩나 노래에 무척 자주 동원되는 귀절이다. 이것은 그리스의 醫聖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생)의 말이다. 그것은 그의 맨 처음에 기록되어 있다. 보통 '藝術'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기술 특히 의술(醫術)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생은 짧지만 의술은 심오한 것이어서 도저히 구명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이에 종사하려는 자는 스스로 경계하고 게을리하지 말라.' 하는 뜻의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이 말은 다시 '好機는 날카롭고 (험준하다 혹은 寸時를 다툰다는 뜻) 試圖는 실패하기 쉬우며 판단은 어렵다. 그러므로 사람은 필요한 수단을 몸소 다할 뿐만 아니라 환자나 臨席한 자, 혹은 외계 사물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고 계속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판단'이라 해석한..

서양의 역사와 일화(5), 솔론의 改革/조개껍질의 追放

# 솔론의 개혁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고도의 도시국가였고 민주주의 아래 번영을 누렸지만 이러한 민주정치가 완성하기까지에는 역시 수많은 정치적 변천을 겪어야 했었다. 아테네는 이오니아인이 정주하여 건설한 포리스이며 초기에는 다른 도시국가와 마찬가지로 族長적인 욍을 추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주로 귀족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다. 지중해 연안의 교통이 발달하고 상공업과 노예매매가 성행해짐에 따라 평민들의 경제력이 신장되었고, 지주계급인 귀족의 권력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귀족과 평민의 대립이 심해져서 그 사이에 끼여 독재적 권력을 행사하는 소위 僭主라는 것이 나타났다. 그들은 대개 명문출신이었는데, 비합법적인 지배자로서 그 지위가 세습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 크레이..

서양의 역사와 逸話(4), 다모크레스의 칼/너 자신을 알아라

# 다모크레스의 칼 시실리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왕 메이오니시우스의 신하 가운데 다모크레스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왕에게 영합하기 위해 언제나 왕의 행복함을 찬양했다. 그러자 어느날 왕은 다모크레스를 보고 말했다. "네가 항상 부러워하여 마지 않는 왕의 자리에 하루 동안만 앉아 보아라." 다모크레스는 왕의 호의에 감사하며 왕좌에 앉았다. 눈앞에는 산해진미가 그득히 놓여 있었다. 문득 천정을 쳐다보니, 머리 위에는 날카로운 칼이 한가닥 머리칼에 매달려 드리워져 있었다. 다모크레스의 감격은 금시 공포로 변했고, 왕좌에 앉아 있는 동안은 산 것 같지 않았다. 이 전설은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의 자리란 결코 겉보기처럼 좋기만 한 것이 아니고 항상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스코틀란드의 민속학자 프..

서양의 역사와 逸話(3), 우리는 명령을 지켜 이곳에 왔다

# 우리는 명령을 지켜 이곳에 왔다. 기원전 500년 경 - 페르샤는 동쪽에는 인도 국경으로부터 서쪽에는 에에게해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장악하고 있었다. 동양의 漢, 唐에 필적할 만한 고대 유수의 大帝國이었다. 한편 그리스는 그리스 반도의 끝을 차지하고 있는 小民族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개개의 도시는 독립된 주권을 가진, 소위 도시국가(포리스)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시국가의 내부는 그 당시로 보아서 놀라울만큼 민주정치가 행해졌고, 고도의 문명이 꽃피고 있었다. 그리스는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에 미레토스를 비로산 식민지를 건설했었으나 폐르샤의 서쪽으로 뻗어날수록 그들 도시도 말려들고 말았다. 그러나 정치의식이 높은 그리스인은 페르샤의 중앙집권적 지배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을 페르샤군..

西洋의 歷史와 逸話(2), 악어의 눈물/스파르타 敎育

# 악어의 눈물 세익스피어의 , , 등을 떠들어 보면 '악어의 눈물'이란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의 문헌 을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만약 악어가 물가에서 사람을 발견한다면 가능한 이를 죽이고, 그 후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잡아 먹을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이 귀절에서 借用해서 썼다는 설이 있다. '악어의 눈물'이란, 말하자면 거짓 눈물을 뜻하며 그 악어는 위선의 상징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악어의 논법'이란 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나일강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악어가 잡아갔다. 그의 아버지(혹은 어머니)는 자식을 돌려달라고 애걸했다. 그때 악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이를 돌려주겠는가. 안돌려 주겠는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다면..

西洋의 역사와 逸話(1), 피라밋

# 피라밋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동과 서는 사막을, 북쪽은 나일강 유역을 안고 있는 나라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나일의 상류는 범람하고 그리하여 이집트의 국토는 비옥해졌으며 그 주민 함족은 농경에 기쁨을 듬뿍 가졌었다. 그리스의 史家 헤르도토스의 말마따나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었다.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라면 나일강의 델타(Delta)다. 이집트의 경의와 비밀은 나일의 델타를 떠나 증명할 수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집트 하면 곧 연상되는 것이 하나 있다. 피라밋이다. 그것은 이집트 문명의 거룩한 역사다. 기원 전 3200년 경 이집트는 이미 통일국가를 이룩했으며 절대적인 왕권이 확립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들추어 보면 거의 30개의 왕조가 교체되었는데, 그것을 ..

치완성매(齒腕成媒)/반반견(般般犬)/웅벽력(雄璧靂)

# 치완성매(齒腕成媒, 잇빨과 팔이 중매를 서다) 어느 집에 계집 종이 있어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미끄럽게 흘렀다. 그런데 다뭇 그 여종이 이를 닦지 않아 황금니를 하고 있었다. 이웃에 홍서방이라는 자가 있어 또한 풍모가 가히 봄직하나 목욕을 즐기지 아니하여 팔과 손이 까마귀같이 때가 끼었었다.고 ㄱ이때 好事者가 있어 계집종에게 이르기를, "홍서방이 항상 그대의 자색이 천하일색이라고 칭찬하나 다만이가 누런 것이 한스럽다고 하더라." 하고, 또 홍서방 보고는, "아무집 종은 늘 그대의 풍모를 칭송치 않는 바 아니나, 다만 팔과 손에 때가 끼었음을 흠할 뿐이라고 하더라."고 말하니, 계집종과 홍 서방이 아울러 그 말을 믿고 나날이 이와 팔이 깨끗해져 갔었다. 어느 날 홍서방이 드디어 계집종을 찾아가 그 집 ..